대구에서 가기엔 멀다. KTX에서 내려 승용차로 1시간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파주영어마을. 개원 사흘째를 맞은 5일 파주영어마을은 평일 오후인데도 일일체험에 나선 학생, 학부모들로 북새통이었다.
성문처럼 생긴 정문을 따라 들어가니 말 그대로 '외국'이다. 입장권을 구입하려면 누구든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곧바로 영어다. 몇 마디를 더듬거려 입국수속을 마치니 임시여권까지 손에 쥐어준다.
순간, 함께 들어온 한 아이들이 갑자기 '와~' 하는 탄성을 터뜨린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외국인들이 마을 곳곳에서 마칭밴드 공연을 하며 행진하는 모습은 어른의 눈에도 신기하다. 서양식 건물들 사이로 뻗은 도로에는 뉴욕 시내에서나 볼 수 있는 트램(Tram.전차)이 종을 울리며 레일 위를 다니고 있다. 미국의 어느 대학촌에 온 듯한 기분.
마을안 서점, 커피숍, 레스토랑, 우체국, 은행 등에서는 미국인, 캐나다인 점원들이 직접 물건을 팔고 앞치마를 두른 채 서빙을 하고 있다. 건물 모서리를 돌 때마다 마주치는 외국인들은 "Hi!", "How are you?" 라며 인사를 걸어온다. 도저히 한국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직 영어만을 위한 테마파크다.
이곳에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가르친다는 걸까.
영어마을 직원의 안내를 받아 교실 이곳 저곳을 다녔다. 경기도 2개 중학교 500명의 학생들이 5박 6일 코스 1기 입소생으로 공부중이라고 한다.
"You 2 guys partner. one person blind, and another one give direction. ok! who 's next?" (두 사람이 파트너예요. 눈을 가린 친구에게 방향을 지시하면 됩니다. 자, 누구 할 사람?). "me!" "me!" "me!"(저요, 저요, 저요)
'창의력 클래스'라는 푯말이 붙은 한 교실은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하다. 눈을 가린 학생이 친구의 지시대로 발을 옮겨 바닥에 깔아 놓은 신문지 조각에 안착하면 safe, 맨 바닥을 밟으면 바다에 풍덩이다. 원어민 여교사의 가식없는 표정과 활기찬 몸짓에 아이들이 발을 구른다. "Turn right! (오른쪽으로 돌아)" "Which direction? (어디로?) 등 학생들의 입에선 짧지만 분명한 영어가 자연스레 나오고 있었다. "Please come here."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히 있는 학생에게 옆 친구가 "너, 오래." 라고 하자, "Only English!" 교사 크리스틴이 심각한 표정으로 학생들에게 이 곳의 룰을 외치게 한다. "Speak English! (영어로만 대화하라)" "Have fun!(즐겨라)" "Listen to the speaker!(귀 기울여라)"...
요리시간. 6, 7명씩 팀을 이뤄 팬케잌을 만드는 학생들의 얼굴엔 호기심과 웃음이 넘친다. "It looks ugly. but tastes good!(못 생겼지만 맛은 좋겠는걸)" 원어민 교사는 못 한다고 탓하는 대신 칭찬하며 자연스레 영어를 유도한다. 이쑤시개를 쌓아 작은 구조물을 만드는 과학시간. 재료를 더 달라고 할 때도 한국말은 통하지 않는다. 원어민 교사는 학생의 눈을 쳐다보며 "May I ~" 라고 따라 말하게 한다.
설립 이념을 묻자 과학을 맡은 원어민 여교사 에린은 "Confidence!" 한 마디로 요약했다. "이 곳에서는 학생들에게 문법을 가르치지 않아요. 신나게 배우면서 영어로 말하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하지요."
경기도 군포시 도장중학교 친구들과 5박 6일 과정으로 들어온 김주찬(14) 군은 "저녁 시간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춤과 게임을 배웠다."며 "하루 종일 영어가 들리니까 신기하고 좋다."고 으쓱 한다. 자녀들과 일일체험에 나선 학부모들은 외국인 점원에게 말을 걸어 책이나 커피, 아이스크림을 사는 학생들의 모습에 신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쉬운 면도 보인다. 신체 활동이나 만들기 등이 포함되지 않은 강의식 수업에서는 교사의 목소리만 들리기도 한다. 재미와 자율을 강조하다보니 수업 분위기가 산만한 곳도 보인다. 인천에서 왔다는 학부모 이진숙 씨는 "돈과 인력을 투자한 만큼 재미 이상의 교육적인 효과를 거둘지는 솔직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 무엇을 가르치나?
정규교육 프로그램 4개 과정과 총 22개 일일체험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정규교육 프로그램인 '5박 6일반' 이 중심. 과학·스피치·요리·드라마·뮤직 등 10개 과목과 5개 공통과목을 배운다. 경기도내 중학교 2학년생만 신청 자격이 주어지며 한 학년 전체가 입소한다. 1인당 비용이 8만 원으로 저렴하다.
▶ 대구.경북 학생, 어떻게 이용하나?
타 시·도 학생들은 '주말 초등반'과 '일일 체험반' 만 이용할 수 있다. 경기도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주말 초등반은 인터넷(english-village.gg.go.kr/paju) 선착순 모집이며 일일 체험반 경우 현장 발매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입장권을 예매하는 편이 미덥다. 비용은 표 참조. 문의 031)956-2323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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