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차별을 생각한다

입력 2006-04-10 07:39:24

하늘이 낮고 대기는 차가운 아침,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삐약거리며 학교 가는 병아리 떼가 보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많은 아이들 중에 내 아이만 눈에 들어온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다들 그렇다고들 한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혹은 필요한 것만 보게 된다. 물이 반쯤 담긴 잔도 비어있는 반을 보거나 채워져 있는 반을 보거나 할 뿐이다. 하인즈 워드가 왔다. 어떤 정치인은 석굴암의 금강역사가 살아서 걸어오는 듯 했다고 표현했다.

이미 그는 워드에게서 금강역사를 보기로 작정 했었으리라. 만약 성공한 스타가 아니었다면, 그 정치인은 워드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검은 피부색 혹은 주한미군과 우리의 근대사의 상처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미 우리 곁에는 많은 혼혈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서 우리와 같은 부분을 볼 수도 있고, 우리와 다른 부분을 볼 수도 있을 터인데, 우리는 굳이 다른 점만을 보아 왔다. 애써 다른 점을 강조하고 부각시키기도 했다.

'코시안'이라는 단어도 다름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혼혈 사이에도 우열이 존재한다는, 구미와 동남아를 한 번 더 차별하는 생각이 포함된 호칭은 아닌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유학을 받아들이면서 중국과 일체화하기 위해, 같은 민족이었던 주변의 동이·몽고·만주족을 오랑캐로 내몰면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우리는 분명 학교에서 배웠다. 한국인의 기원은 북방계:남방계가 6:4의 비율로 섞인 것이라고.

생물시간에는 유전자가 섞일수록 우세해진다는 이론도 배우지 않았던가. 그리고 순혈주의라는 발상이 가져온 세계사의 비극을 기억하고 있다. 아리안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히틀러를 보면서도 깨닫는 바가 없다면, 그의 폭력성에 약간의 모자람이 있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워드에게서 우리와 같은 부분만을 본다면, 성공하지 못한 워드들에게서도 우리와 같은 부분만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와 다른 부분이 없는 또 하나의 이방인, 중국의 조선족도 '우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차별하지 않아야 우리도 차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단순한 진리이다.

백운하 (주)크레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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