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에너지 중독

입력 2006-04-04 11:53:54

에어컨은 겨울에 사라는 충고가 있었다. 비수기에 장만하면 값이 싸고 서비스가 좋아 유리하다는 얘기였다. 지금이 나무 심을 계절이듯, 무생물들에도 식목일 비슷한 대처 적기가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근년에 특히 화급한 세계적 문제로 대두된 대처 대상은 에너지이다. 1996년 이후 유가가 3배나 오른 데다 이번 상황은 1970년대 오일쇼크와도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30년 전 그때는 유가가 전쟁 등등 탓에 일시적으로 급등했다가 주저앉았었다. 반면 지금의 고유가는 물러설 가능성이 거의 없다. 종전까지는 미국이 세계 에너지의 25%를 소비하는 나라였지만,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가 드디어 석유를 퍼마시기 시작함으로써 상황이 달라졌다. 이미 세계 2위의 석유 수입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지난 1월 사우디와 에너지 협력 협정을 체결하는 등 석유 확보에 전력을 투구 중이다.

○…자원 확보력이 장래를 좌우할 요체로 부상하면서 세계 각국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올해 초에는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끊어 우크라이나에서 난리가 났다. 그런 뒤 러시아에서는 무역 보복 소문으로 소금값이 20배나 폭등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실제적 이유가 바로 석유에 있다는 분석이 제시된 바 있고, 베네수엘라는 미국 주도의 석유 질서를 흔들려고 배럴당 50달러에 석유를 공급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각국은 속속 '탈(脫)석유 정책'을 천명하기 시작했다. 스웨덴은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탈석유화'를 선언했다. 15년 안에 석유 없이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지난 1월 20년 이내에 중동 석유 수입량을 75%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세계적 탈석유 분위기 이후 이제는 우라늄이 석유 대신 국제 정치의 지도를 바꾸는 핵심으로 등장했다.

○…스웨덴은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77%이던 석유 의존도를 32%로 낮췄다. 그러나 국내총생산액 세계 11위인 한국은 여전히 석유 소비에선 세계 7위나 된다. 자신도 한국에서 IMF사태를 겪느라 큰 고통을 받았던 한 외국인 교수는 그래서 "한국은 지금 IMF때보다 100배나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게 하는 말이었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kore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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