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게 미국의 코네티컷주에 사는 딸애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반가워서 한참을 통화하다가 외손자 녀석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를 바꾸라고 했더니 한참 만에 녀석의 깰깰거리는 웃음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철현이야,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여기 한국이야. 그랜드파더. 오늘도 유치원에 갔었니?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있지…."
한참을 지껄여도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순간, 이 녀석이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는 한국말 사용을 어려워한다는 딸애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 이게 아니지. 헤이 암스트롱! 아이 엠 유어 그랜드파더. 유우 노우? 아이 러브 유. 오케이. 아이 원트 투 씨 유. 아이 씽크 유 에브리데이…??
먼지 묻은 영어 단어들을 아는 대로 찾아내어 이리저리 나열해도 도무지 반응이 없던 녀석이 갑자기 영어로 뭐라 뭐라 지껄이고는 수화기를 제 어미한테 넘겨주고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녀석이 들려준 발음들을 겨우 겨우 조합해 보니 아마 이런 말이었지 않나 짐작되었습니다.
"I didn't catch you. What did you say?"
'가만있자, What did you say? 라니? 이건 우리 고장 사투리로 뭐라 카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말이 아닌가??? 전화를 끊고 자리에 누워도 녀석의 말만 귓가에 맴돌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젠 외손자를 직접 만나더라도 말이 통하지 않아 강아지나 먼 산의 나무 쳐다보듯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상 한 모퉁이가 텅 빈 듯 섭섭해지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말로서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눌 수 없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가 닿을 수 없는 섬이며, 멀뚱히 쳐다보기만 해야 하는 외계인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돈 많은 사람과 돈 없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 노동을 사는 사람과 노동을 파는 사람들 사이의 골짜기가 갈수록 깊어지는 듯한 요즘 우리 사회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말에 의한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는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외손자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녀석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도록 압력을 넣든지, 아니면 내일이라도 당장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해야 할까 봅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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