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가창댐은 고양이처럼 나른하다. 굽은 도로가에도, 앙상한 나무등걸에도, 낮은 산등성이에도, 집 옆을 졸졸 흐르는 개천에도 어김없이 봄은 다가와 있다. 때때로 좁은 계곡을 따라 부는 쌀쌀한 바람이 민망할 정도로….
'저 길로 차가 올라가 낼까.' 김대성(60) 씨 집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있다. 돌담 옆으로 작은 계곡이 가파르게 지나는 집이다. 안주인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마당은 최근 마친 리모델링 뒷정리로 부산했다. 세간살이들이 마당에 늘어서 있는 , 평범해 보이는 살림집의 모습이 오히려 푸근하게 느껴진다.
"원래 1층집인데 2층으로 개조했어요. 덕분에 실내 공간이 넓어지고 전망도 훨씬 나아졌습니다."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김 씨 집은 헐티재로 향하는 도로 오른 편 양지바른 동네에 자리잡고 있다. 김 씨는 지난 1999년 지인으로부터 1억 5천여만 원에 이 집을 샀다. 대지 130평에 건평 60평 규모. 시내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한 동안 아파트와 이 곳을 오가며 지내다 5년 전부터는 아예 부부가 이쪽으로 들어왔다. 회사도 불과 30분 거리여서 출·퇴근에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김 씨 집의 큰 특징은 자연미를 한껏 살렸다는 점이다. 입지조건이 상수도 보호구역이니 더욱 그렇다.
1층 현관 옆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서 자연미는 가장 돋보인다. 아무렇게나 놓인 듯한 돌계단을 무릎에 힘을 주면서 한 발 한 발 2층 마당으로 오르다보면 마치 뒷산에 등산이라도 온 듯 여유로워진다. 자신의 집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1층 마당의 슬레이트 집이 뭐냐고 물으니 '외양간' 이라며 웃는 주인. 각종 농기구와 연장, 가마솥, 김치독 등을 넣어 보관하고 있다.
"상수도 보호구역이라서 개축이 여간 까다롭지 않았어요. 어찌보면 그 덕에 주변 자연이 잘 보존되니 감사할 일이기도 하네요."
윗층은 지난해 6월 착공해 12월에 준공검사를 받았다. 상수도보호구역에 따른 복잡한 규제로 인해 준공검사를 앞두고 부랴부랴 규정에 맞추느라 새로 설계를 변경하는 등 마음고생도 했다.
김 씨 집에서 또 재미있는 점은 윗층과 아랫층의 구조가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넓은 마루가 있는 아랫층은 전형적인 살림집 스타일. 부엌, 안방, 식탁 등이 1층에 다 몰려있다. 실내 나무계단을 통해 올라간 2층은 중년 부부가 사는 멋을 느끼게 해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침실. 마루바닥 위에 20cm 높이로 목조데크를 올리고 그 위에 이부자리를 깔아 훌륭한 침대로 만들었다. 침대 바로 옆에는 넓은 직사각형 미닫이 창을 달았다. 아침에 눈을 떠 창문을 열면 가창댐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밤이면 나뭇가지에 걸린 달을 창으로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운치다.
"나이들어서 전원생활 한다고들 하는데…. 참 힘들어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들어와야 농사일도 배우고…. 미리 전원생활을 준비하지."
부인 정리나(55) 씨는 '하루라도 더 살려면 山으로 들어가자.' 는 것이 지론이다. 해가 져야 겨우 집에 들어올 정도로 전원생활은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밭 갈고 개, 닭 사료 주고 채소 키우다보면 하루 해가 부족하다는 것. "남편이랑 저랑 뒷산으로 1시간 코스의 등산을 합니다. 맑은 공기와 나무 냄새를 마시며 걷는 이 운동을 시내 헬스장에 비할 수 있겠어요?"
'머리에는 지혜가, 얼굴에는 미소가, 가슴에는 사랑이, 손에는 일이 있어라.' 부엌 칠판에 안주인이 적어 놓은 경구가 이들 부부의 산골 생활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폭설로 도로가 통제되더라도 그 고요함이 좋고, 가끔 찾아오는 중년의 술친구도 새벽까지 반갑고, 계절따라 색깔이 변하는 산이 아름답고, 산 그늘 사이로 무리지어 나는 새들이 부럽다.
김 씨 부부 집 마을에는 모두 8가구가 살고 있다. 시내에서 사업을 하는 그이지만 이웃에게 별스럽게 대하지 않으려 한다. 정 씨는 "이웃의 여든 살 할머니, 할아버지를 청도 각북장터까지 구경삼아 태워 드린 참에 소머리 국밥을 사드렸더니 너무 기뻐하시더라"며 "구수한 이웃들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 point
김대성 씨 집의 포인트는 의외의 공간이다. 바로 2층 욕실과 화장실. "남편이 2층에 경치가 멋진 공간이 곧 개봉박두라며 들떠서 자랑하더라고요. 그게 화장실 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안주인은 그래도 싫지 않은 표정.
보통 전원주택을 짓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집 안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곳에 거실이나 테라스, 하다못해 작은 방이라도 넣는 것이 상식. 그러나 김 씨는 계곡을 통과하는 도로와 산, 개울이 가장 잘 보이는 공간에 욕조와 변기를 함께 설치, 진정한 웰빙을 만끽하고 있었다.
욕조 소재는 '스즈키 목(木)'으로 쓰고 일본식 욕조 스타일을 따랐다. 더운 물이 차면 더 강해지는 소나무 향에 정신이 편안하게 맑아진다. 욕실 벽면 전체도 원목으로 꾸몄다. 부부는 이 곳에서 자주 반신욕을 즐긴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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