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공무원 '자리 만들어주기'…"도 지나치다"

입력 2006-03-27 10:58:00

'낙하산 인사' 반발…알고도 못 막나?

대구시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상당수 단체에 대구시의 퇴직공무원들이 '한자리'씩 꿰차고 앉는 것은 물론 일부 기술직 출신 공무원들의 경우, 자신들이 담당했던 직무와 연관된 업체에까지 재취업하고 있다.

특히 대구시가 퇴직 공무원들의 '자리 만들어주기'에 앞장서고 있어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과 함께 이른바 '끼리끼리 문화'를 심화시켜 대구를 더욱 폐쇄적인 사회로 만든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정년이 없다= 정년 퇴임을 3개월 앞둔 대구시 간부 A씨가 지난 15일 사표를 냈다. 곧이어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 상근 부회장으로 부임했다.

내놓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적었지만 섬유업계가 술렁였다. '임원은 섬유관련 업무에 밝아야 한다'는 정관에도 불구, 2002년 이후 3번 연속 대구시 간부출신 공무원이 협회 부회장에 앉은 탓이다.

대구시는 지난 2000년 사퇴한 전 행정부시장 C씨를 대구상공회의소 상근 부회장에 앉히려 했다가 일부 반대로 포기했다. 대구시는 C씨를 지역연고 프로축구단인 대구FC의 단장으로 앉히려 추진했으나 역시 축구계 반발에 부딪쳐 무산되기도 했다.

대구시의 기술직 출신 공무원들은 민간업체들로 가는 사례가 적잖다.

지하철건설본부에 근무했다 명예 퇴직한 본부장 2명은 지역 유명 건설업체와 건설 용역업체에 부회장과 고문으로 재취업했다. 이 가운데 D씨는 취재 결과, 지난해부터 대구의 한 설계회사 고문으로 재직 중이며 대구시건설기술심의위원회에도 이름을 올려 놓고 있다.

지난해 사표를 낸 대구시내 모 구청 건축과장 출신 E씨 역시 퇴직하자마자 유명 건설업체가 주택본부장으로 '모셔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0년 뇌물 혐의로 물의를 빚어 불명예 퇴직한 전 대구시종합건설본부장 F씨와 대구지하철건설본부 공사부장 G씨는 아스콘업체와 건설업체의 부회장, 상무 자리에 각각 앉았다.

◆왜 이런 일이= 대구시가 민간협회나 단체 등에 지원하는 보조금은 연간 수백억 원대에 이른다. 결국 '대구시 돈'을 따내기 위해서는 현직 공무원과 줄이 닿아야하고, 현직 공무원과 연결시켜줄 퇴직 공무원이 협회·단체마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민간협회 관계자는 "공무원들과 얼마나 많은 친분을 쌓고 있느냐에 따라 보조금 액수가 달라지는게 현실"이라며 "퇴직 공무원을 협회 주요 간부로 앉혀놓으면 보조금 따내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섬유업계 한 관계자는 "마뜩찮기는 하지만 '대구시 돈'에 의존하는 협회로서는 대구시의 추천인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고 털어놓았다.

대구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대구시 한 공무원은 "대구시 내부에서도 '민간 협회나 단체에 대한 명확한 검증없이 대구시 재정이 내려가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며 "과거에 모셨던 선배 공무원이 '부탁'을 하면 재정지원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구시 기술직 출신 공무원 영입이 많은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공무원들의 주관적 판단이 건설업계 수익률을 좌지 우지하는 실정에서 전직 공무원 출신들은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중요 파트너"라고 했다.

◆지금 고쳐놔야= 민간업체들의 '공무원 모시기'는 명백한 공직자 윤리법 위반이라는 비판이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불명예 퇴직한 관료까지 대구시가 협회·단체임원으로 추천하는 관행은 시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대구시와 민간 협회, 단체와의 유착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했다.

김렬 영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모두 공직자 윤리법에 대한 집행의지가 전혀 없다."며 "선진국에서는 정부차원에서 엄격한 윤리기준을 적용하고 사기업들도 스스로 알아서 법을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정년 전에 중도퇴직한 대구시 공무원 가운데 행정직은 209명, 기술직은 185명. 현 정원기준으로 행정직(1천157명)이 기술직(866명)보다 훨씬 많음을 고려할 때 기술직 공무원들의 중도 퇴직 비율이 높았다. 기술직 중에는 시설(토목, 건축, 지적, 도시계획)직 중도 퇴직자가 47%(87명)를 차지해 가장 많은 퇴직 비율을 나타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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