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변은 온통 노란 개나리꽃 천지였다. 포항 IC에서 포항시내를 거쳐 경주방면으로 차로 이동하기를 10여분. 나른한 봄볕이 쏟아지는 한 낮의 들과 강에는 객(客)보다 봄이 먼저 와 있었다. 포항시 연일읍 자명리. 400여m 가량 쭉 뻗은 농로 저 너머로 10여채의 서양식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로 가는 길 초입에는 '한숲전원마을' 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차동운(58)씨가 이 곳 주민이 된 지도 만 3년이 다 돼 간다.
"내가 심은 나무에서 움트는 새순을 보고 기뻐할 줄 모른다면 전원생활을 할 자격이 없다고 봐요. 먹고 자고만 할 밖에야 닭장이나 다를 바가 뭐 있습니까."
포항의 한 중견업체 임원인 차 씨는 지난 2003년 5월 식구들과 함께 이 곳으로 이사왔다. 포항 산골 출신인 그는 전원생활을 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에서 오래 생활했다. 50평짜리 아파트를 마다하고 굳이 촌으로 돌아온 이유가 뭘까. "수구초심이랄까. 나이가 들수록 아파트가 점점 더 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더군요."
차 씨가 사는 마을은 지난 2003년 한 사업자가 2천 600여 평의 임야를 대규모 택지로 개발, 개인에게 1필지씩 불하하면서 조성됐다. 이중 차 씨의 집은 대지 180평에 건평 54평. 평당 50여만 원에 택지를 매입했고 건축비로만 1억 5천만 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입 소문을 듣고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이웃들은 어느새 11가구로 늘었다. 현재 은퇴를 앞둔 기업 직원, 퇴직 교사, 사업가 등이 주로 살고 있다.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모였으니 동호인 전원주택단지인 셈이다. 산 비탈에 자리잡은 맨 꼭대기 집이 차 씨의 스위트 홈. 이 마을 대표인 그는 마을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갖가지 일들을 챙기고 있었다.
"처음엔 골치 아픈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어요". 차씨는 오.폐수, 전기, 도로 등 마을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고 했다. 관할 관청이 마을을 아파트와 같은 하나의 단지로 보지 않고 개인 집들이 모여 생긴 것으로 해석해 행정적 지원을 꺼렸다는 것이다. 또 집마다 다른 건축업자에게 맡기다보니 정화조를 개별로 설치한 일이나 지하에 매설한 전선, 오.폐수관 등 각종 설비의 질도 지금에 와선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건축은 규격화가 부족해요. 시방서도 불분명하고요. 내 평생에 한번 짓는 집 인만큼 설계사무소, 작업 인부에게 꼼꼼하게 지시를 해야합니다."
주민들의 합의가 필요한 사항은 3개월마다 열리는 마을 미팅에서 결정한다. 최근에는 마을 앞을 지나는 7m 높이의 고가도로 건설이 안건이었다.
차동운 씨 집은 스틸하우스다. 이 마을 11채 중 10채가 스틸하우스다. 경량 압연 강판으로 뼈대를 짜고 내.외벽은 일반 집의 벽채처럼 시멘트와 단열재, 석고보드 등을 여러층으로 겹쳐 세웠다. 아연도금이 된 스틸은 부식이 거의 없고 반영구적이라는 것. '스틸'이라지만 겉모양에서는 전혀 차가움을 느낄 수 없다.
차 씨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층층이 가파르게 놓인 나무계단이 보인다.
"옛 말에 마당이 오르락 내리락하면 병신이 많다고들 하던데 지금 시대와는 안 지. 자연스럽게 운동이 돼 잖아요."
높이 20cm, 40개의 나무계단이다. 현관까지 8m 높이를 매일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운동이 되지 않을 리 없다. 마당으로 올라서 만나는 정원이 유난히 넓어 보인다. 대문 위까지 잔디를 깔았기 때문이다. 차 씨는 전망을 고려해서 가장 높은 터를 잡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집 바로 뒤 편에는 야트막한 봉우리가 전망대처럼 솟아있다. 마당에서 불과 열 발자국이다. 차 씨는 그 곳에 손수 작은 원두막을 지었다. 원두막으로 올라가는 길 옆 소나무 숲에서 나는 향이 상쾌하다. 전망대에 앉아 보니 온 들판이 발 아래 시원하게 펼쳐진다.
"겨울에만 새벽 6시, 그 외 계절에는 동 트기 전에 일어납니다. 일찍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전원 생활할 자격이 없어요." 이곳에 오고나서 혈압도 180에서 110정도로 내렸다고 했다.
특히 가족 공동 공간인 거실은 천정을 높여 지어 탁 트인 맛을 더한데다 차분한 인테리어와 벽난로가 집 주인의 멋이 느끼게 한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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