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고객은 제발…" '억지 고객' 백태

입력 2006-03-25 07:23:31

백화점과 대형 소매점은 상품만 파는 곳이 아니다. 친절과 서비스라는 보이지 않는 제품도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얌체족'들도 적잖다. 막무가내식 트집잡기, 무조건 고함지르며 환불·교환을 요구하기 등등 유형도 다양하다. "제발 우리 물건 안사셔도 좋으니 오지 마세요."라고 말할 정도. 상상을 초월하는 '억지 고객'들의 백태를 들여다보자.

◆맛이 이상해. 무조건 환불해줘!

A 백화점 식품관 안내데스크. 한 고객이 거의 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찾아왔다. 원래 5개 들이 멀티팩 제품을 구입했던 이 고객은 평소 즐겨 먹는 이 아이스크림의 맛이 이상하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5개 중에 이미 3개는 먹었고, 1개는 맛이 이상해 먹다가 버렸다는 것. 제조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생산하는 아이스크림 맛에 이상이 있을 리도 없고, 이미 먹었기 때문에 교환·환불이 불가능하다고 매장 직원이 설득했지만 막무가내. "고발하겠다, 사장 불러오라"며 소란을 피워 결국 환불 조치.

한 대형 소매점의 경우, 오징어 10개 들이 한 팩을 구입한 고객이 일주일이 지난 뒤 "9마리를 먹었는데 더 이상 맛이 없어 못 먹겠다. 환불해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꼬리곰탕 제품을 구입한 뒤 꼬리뼈 몇 개만 들고 와서 국물이 뽀얗게 안나온다며 전액 환불을 요구하기도 한다. 수박 절반을 먹고, 일주일 뒤 나머지 반이 상했다며 돈을 돌려달라는 고객도 있었다.

고급 양주의 경우, 탈세(?)를 시도하는 고객도 있다. 고급 양주를 가져와 환불을 요구해 매장 담당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면세점 표시를 살짝 지운 흔적이 보였다. 흔적을 보여주며 구매처가 다르다고 말하자 "그럴 리가 없다."며 도리어 화를 냈다. 백화점 한 관계자는 "24개 들이 두유를 사서 2개만 가져온 뒤 유통기한 지났다며 반품을 요구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유행이 지났잖아. 다른 걸로 바꿔!

B백화점 남성의류 매장. 판매된 지 3년이 지난 가죽점퍼를 들고와 유행이 지났으니 바꿔달라며 고객이 찾아왔다. 산 뒤 두번 밖에 입지 않았는데 유행에 너무 뒤쳐진다는 것. 여직원 밖에 없는 곳에서 이 고객은 욕설을 퍼부으며 담배를 피워물기도 했다. "비싸게 산 옷인데, 교도소 갔다왔더니 유행이 지났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에 산 수영복이 심하게 부식되고 탈색돼 교환해 달라고 찾아온 여성 고객도 있다. 기능성 섬유로 된 수영복이 변형될 리가 없다고 판단한 매장측은 제품 검사를 했고, 결국 지난해 해수욕을 한 뒤 수영복을 빨지도 않고 방치한 탓에 염분이 남아 변형된 것으로 밝혀졌다. 값 비싼 모피제품을 사서 모임 등에 입고 나간 뒤 반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의류매장 한 관계자는 "인터넷이나 TV홈쇼핑으로 구입한 옷을 매장에서 구입했다며, 교환을 요구하거나 사은품을 달라는 고객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며 "심지어 여름에 반팔 티셔츠 10벌을 구입한 뒤 가을에 영수증을 가져와 옷감이 안 좋아 못입겠다며 남방 3벌로 교환해 가고, 다시 초겨울에 가을 영수증을 가져와 겨울 파카로 교환해 간 손님도 있다."며 허탈해했다.

◆명품 자랑 끝. 돈으로 다시 돌려줘!

백화점 명품관을 찾는 고객 중에 충동 구매를 해놓고 뒤늦게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명품 E 브랜드 한 매니저는 "관계가 의심스런 남녀 고객이 와서 명품 가방이나 액세서리를 사놓고, 며칠 뒤 여성 혼자 와서 슬며시 현금으로 환불해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친구나 계원들과 함께 명품 매장을 찾아와 실컷 사놓고 이튿날 혼자 몰래 찾아와 반품하는 경우는 다반사.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반품하면 그만이라는 배짱식 고객들도 골칫거리다. 특히 명품 모피의 경우, 겨울철 망년회 등 특별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구입했다가 이튿날 바로 환불을 요구하는 사례도 가끔 있다. 물론 절대 입지 않았다고 시치미 떼는 것은 기본.

명품매장 한 관계자는 "심지어 신혼 첫날 밤 입었던 속옷을 반품해 달라는 신혼부부 앞에서는 할말을 잃었다."며 "가짜 명품인데도 백화점에서 구입했다고 우기면서 무상 수리를 요구하는 경우는 대놓고 무안을 주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어? 다 책임져

백화점 주변에 불법주차했다가 스티커를 발부받으면 백화점에 따지는 고객, 2년 전 정상가로 구입한 제품이 이월상품으로 50% 세일한다며 항의하는 고객, 주차장에 있는 차에 흠집이 생겼다고 해서 확인해보면 흠집 사이에 빨간 녹이 슨 것이 보이는데도 방금 이렇게 됐다며 우기는 고객….

매장 직원들로서는 정말 피하고 싶지만 회사 이미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경이다.

심지어 자동차 부동액을 구입한 뒤 엔진오일로 착각해 가족이 사용하는 자동차 4대에 넣었다가 엔진이 큰 말썽이 생겼다며 난동(?)을 피우는 '엽기 가족'까지 있을 정도다.

이른바 '사은품 사냥꾼'도 기피대상 중 하나. 행사 기간 중 사은품을 받기 위해 수십만 원 어치 물건을 구입해놓고, 사은품만 챙긴 뒤 뒤늦게 찾아와 구매한 물건을 반품하는 경우다.

가전매장의 경우, '정보 사냥꾼'도 요주의 대상이다. 인터넷이나 홈쇼핑을 통해 구매제품을 정해놓고, 백화점 등에 찾아와 최종 정보 및 가격만 확인하는 사람들. 백화점 전자매장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한 직원은 "이런 고객들의 경우, 제품별 장단점까지 꼼꼼히 캐묻는데 보통 30분에서 2시간 가량 설명을 들은 뒤 정작 구매는 다른 곳에서 한다."며 허탈해했다.

◆억지성 고객은 이런 사람들

일부 유통업체는 '억지성 고객'만 별도로 관리하는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해두고 있다. 한 업체의 경우, 점포별로 50여 명 정도의 블랙리스트를 갖고 있으며, 다른 점포 및 매장과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리스트까지 만드는 이유는 무작정 우기기로 나오는 고객의 요구에 순순히 끌려다니지는 않겠다는 뜻. 이런 리스트에 오른 고객은 40~50대가 가장 많다.

억지성 고객에도 특성이 있다. 대부분 스스로 지성인이자 매장의 우수 고객임을 강조한다. "내가 여기서 구매한 금액이 얼만데 나를 무시하느냐? 점장 데려와라."는 식이다. 일부 고객은 사회적 지위를 은근히 과시하거나 수사기관, 언론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을 잘 안다는 식의 '협박성' 특성도 갖고 있다. 유통업체 고객상담실 관계자는 "고객 불만 중 50~60%가 억지성"이라며 "무조건 큰 소리로 최고 책임자를 찾는 사람, 아는 사람이 고위층이거나 경찰, 기자라고 사칭하는 사람, 점장이나 담당자 능력이 없다고 하는 사람, 몇 시간이고 자리잡고 안 가는 사람, 옷을 찢거나 물건을 던지는 사람 등 유형도 다양하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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