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공부할 때 뭐 하세요?"…엄마의 관심은 훌륭한 도우미

입력 2006-03-21 07:21:09

"아이들 공부할 때 엄마들은 뭐 하세요?"

많은 학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고민 중 하나. 열심히 공부하는 자녀를 옆에 두고 TV를 켜기도, 집안일만 붙들고 있기도 맘이 편치 않다. 그렇다고 함께 붙어앉아 공부를 가르치려니 엄마의 '실력'이 들통날까 걱정이 앞선다. 마지못해 옆에서 책도 읽고, 인터넷을 통해 이리저리 자료도 검색해보고, 십자수도 놓아보지만 졸음을 쫓기가 쉽지 않다.

바깥 일을 하는 워킹맘(working mam)이라면 고민은 더욱 크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라도 아이와 함께 하며 학교 숙제라도 도와주고 싶지만 일과 가사에 쫓기다 보면 마음만 앞설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실력이 엄마의 관심만큼 자란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막연히 '공부해라, 숙제해라'라고 말하는 엄마보다 옆에서 공부하는 자녀를 지켜보며 한마디 말이라도 거들어주는 엄마에게 아이들이 더 힘을 얻는 것도 분명하다. 현명한 엄마라면 어디서 절충점을 찾아야 할까?

△영어의 벽에 부딪힌 엄마

직장생활 11년차인 김경인(35) 씨. 올해 큰 딸을 초등학교에 보낸 김 씨는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 아이의 공부를 봐줘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어쩔 수 없이 두손을 들고 말았다. 대학을 졸업한 김 씨였지만 초등학교 1학년의 영어 학원 숙제에 모르는 단어가 태반이었던 것. 결국 '숙제해라'고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고, 아이는 알파벳을 베껴 그리는 데 열심이었다.

영어 학습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부모가 자녀의 영어 공부를 도와주기는 쉽지 않다. 요즘 아이들은 A, B, C 등 철자가 어떤 음으로 소리나는지부터 익히기 시작하는데다, 외국에서 수입한 교재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어휘와 문장을 중심으로 언어를 배우기 때문에 엄마 세대의 영어 학습법과는 차이가 크기 때문. 콩글리시 발음도 엄마들의 말문을 닫게 만드는 주 요인이다.

이에 대해 이 율리아(이보영 토킹클럽 장기분원) 원장은 "아무리 학교와 학원에서 오래 영어 수업을 받는다고 해도 이를 체화하는 시간이 없으면 영어 실력이 쑥쑥 늘기는 힘들다"며 "반복해서 단어와 문장을 소리내 말하고, 대화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야 말하기와 쓰기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엄마가 얼마나 도와주고 함께 공부하며 영어를 사용할 기회를 제공해 주느냐가 아이의 실력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녀와 함께 사전을 뒤적여가며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이 필요하다. 영어에 두려움이 있는 엄마라면 아이에게 의지해 오히려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어, 엄마가 모르는 단어인데 이건 어떻게 발음해?", "어떤 의미인지 엄마에게 설명해줄래?"라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자녀의 영어 공부를 돕기에는 충분하다.

△공부의 길을 가르쳐주는 조언자

초등학교 국어 숙제는 교재를 몇번 읽으라던가, 글짓기·일기를 써오라는 등이 대부분. 이는 우리말에 대한 독해능력을 향상시키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국어 과목은 굳이 엄마가 함께 자리에 앉아 일일이 가르쳐주거나, 문제집 풀이를 종용할 필요는 없다. 대신 글의 흐름을 올바로 읽어내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옥정 북부초교 교사는 "6학년생 중에도 의외로 글의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시간, 사건 중심으로 흐름을 정리하는 걸 어려워하는 학생이 많다"며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국어 때문에 힘들지 않으려면 부모가 함께 책을 읽고 주제와 요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부모가 아이가 읽는 책의 간단한 줄거리와 등장인물 정도는 파악하고 틈틈이 질문을 던져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수학 역시 문제를 풀어주는 선생님이 되기보다는 좀 더 효과적인 공부의 방법을 일러주는 조언자 정도로 충분하다. 이성희 교대부초 교사는 "엄마가 문제 하나하나를 풀어주는 선생님이 되려 하다 보면 엄마도 힘들고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며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연산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반복학습을, 고학년때는 교과서의 개념원리를 중심으로 복습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정도면 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간섭은 금물

아이가 공부할 동안 부모가 함께 책상에 앉아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지만 여기에도 지켜야 할 정도가 있다. 지나치게 자녀의 공부에 간섭하려 들면 오히려 반발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만 키우기 십상이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기쓰기나 글짓기 등을 할 때 엄마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 형식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다음 문장을 이어 나가지 못할 때 "그 다음에는 이렇게 쓰면 되겠네."라고 일러주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엄마의 도움을 받는 습관이 들면 아이의 글쓰기 능력은 결코 향상될 수 없다.

"책상에 똑바로 앉아", "숫자를 더할 때는 일의 자리부터 십의 자리, 백의 자리 순으로 올림해 가며 계산해야지" 등의 말도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 이성희 교사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에게 적합한 공부방법을 찾아가지만 '정도(正道)'만을 고집하는 엄마의 말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고 말했다.

함께 책을 읽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가 조금만 산만하거나 지겨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잔소리를 하는 엄마의 모습 역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엄마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옥정 교사는 "관심은 두되 자녀가 엄마를 '감시자'로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할 때도 명령조가 아니라 부드러운 설득형 말투를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스스로 공부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글·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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