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굿 모닝!

입력 2006-03-15 07:17:28

"2월 바람에 큰 독 깨진다"더니 바람이 꽤나 심술궂다.거기다 황사에 눈발까지···. 꽃샘추위가 녹록잖다. 길 떠난 겨울이 되돌아 왔나 싶을만큼.

어저께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먼 길을 떠났다. 환희와 실패, 낙망의 굽이를 돌고 돌아 이제 다시 일어선 그가 마흔여섯의 페이지를 접고 홀연히 가버렸다.

억지웃음식 코미디를 떨쳐버리고 정통 스탠딩 코미디를 통해 웃음의 씨앗을 뿌리던 그였다. 늦은 밤 사람 마음을 찝찝하게 만들곤 하는 TV의 스트레스성 뉴스 보도에 대해 "온 국민이 웃다가 잠들게 해야 한다"고 익살스레 꼬집을 줄 아는 그는 웃음의 철학자였다. 생전의 약속대로 비만연구에 써달라며 자기 몸을 한 대학병원에 남기고 갔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더니 김형곤표 웃음과 이웃사랑을 남긴 그도 그만하면 잘 산 인생이라 하겠다.

법정스님은 "제아무리 가진 것 많은 사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지만 나보다 훨씬 가진 것 없으면서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끄러워진다"고 했다. 갸느린 체격에 사근사근한 말씨, 소녀같은 얼굴의 한 후배에게서 비슷한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언젠가 자신이 죽으면 안구와 장기들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게끔 해놓았다. 어느 날 문득 "죽으면 썩을 뿐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 약속이 지켜지게끔 늘 카드를 휴대하고 다닌다 했다. 당시엔"나도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아직 결단 못한 자신이 그래서 더 부끄럽다.

서양 속담에 "죽음의 신은 어느 집 대문 앞에도 무릎을 꿇는 검은 낙타"라고 했다. 누구도 그 날과 그 시간을 알 수 없음을, 1분 1초도 제맘대로 생(生)의 시간을 늘릴 수 없는 한계 속의 존재가 우리임을 다시금 기억하게 된다. 그러기에"이승을 산다는 것이 나에게는 갈수록 눈물겨워진다"는 김춘수 시인의 고백은 늘그막의 고독 보다는 삶이라는 선물에 대한 감사의 고백으로 읽고 싶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나왔던 집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또한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내일 아침 그 대문을 나서지 못한다. "굿 모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아침에 헤어진 가족을 저녁에 다시 볼 수 있다는 건 그래서 크나큰 축복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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