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지금 선거에 눈돌릴 틈 없다"

입력 2006-03-10 10:31:00

데스크 칼럼-선거에 눈돌릴 겨를 없는 공무원

5·31 지방선거가 두 달하고도 20일이나 남았는데 온통 난리다. 예비후보로 등록한다, 공천을 신청한다, 후보 경선을 한다….

왜 이렇게 지방선거가 전례없이 조기과열된 것일까?

아마도 새로운 제도 탓일 게다. 선거일 석 달 전에 예비후보로 등록하게 했고, 지방의원 유급화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도입한 것이 새롭다.

장단점은 항상 있다. 예비후보제는 정치신인에게 유익하다. 지방의원 유급화는 지방의원 자질을 높이는 이점이 있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란 정신에 맞다.

하지만 예비후보제로 선거전이 너무 길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온통 공천과 선거운동에 골몰해 지방정부가 조기 레임덕에 빠져 삐걱댄다.

지방의원 유급화로 나라와 지자체 살림에 대한 걱정이 벌써 나온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기초의원-광역의원-지자체장이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에게 일렬로 줄서게 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이래도 지자체의 선장과 견제자인 지방의원을 뽑는 '민주주의의 잔치'거니 하고 우리 모두 감내해야 할까? 아니올시다이다.

지방선거로 몸살을 앓는 3개월이 나라와 지방정부의 내년 예산안을 짜는 천금같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는 이달 말까지 내년 예산안을 개략적으로 짜야 한다. 4월 말까지 빠진 예산을 추가하는 등 막판 손질해 최종안을 정부 각 부처에 제출해야 한다. 각 부처는 5월 말까지 부처안을 확정한다. 그러면 끝이다. 정부 실세나 국회의원을 동원해 갖은 노력을 해도 없던 예산을 새로 만들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각 부처의 전체 예산규모를 먼저 정해 버리는 '탑-다운제'라 더욱 그렇다.

5월 31일 당선되는 지자체장이 살림에 애살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기가 찰 것이다. 온갖 비전을 제시하고 공약했는데 올해의 절반이 가버렸고 내년 예산안마저 이미 확정돼 옴짝달싹 못할 지경이 된다. 결국 4년의 임기 가운데 제대로 일 할 기간은 2년반 남짓뿐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온몸에 힘이 쏙 빠질지도 모른다.

부단체장 이하 공무원들이 선거 분위기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정신을 바짝차리고 일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 단체장이 추진해온 사업을 차질없이 이어가는 것은 물론 비전있는 사업이라면 주저말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새 단체장이 오면 해야지 하고 미뤄두고 있을 여유가 없다.

대구·경북에서 들리는 몇몇 소식은 이런 점에서 어둡다.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시는 6월 말까지 국무총리 산하 방폐장 유치지역지원위원회에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달라고 건의를 해야 하는데 "교수에게 용역을 줬다"면서 "내용을 아는 공무원은 아무도 없다"는 답변이다. 국회의원이 확보해 준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IGIST) 예산을 두 차례나 반납한 바 있는 대구시는 'DGIST를 테크노폴리스와 분리 추진해야 건설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제안에도 별무반응이다. 대구시 고위 관계자는 "별도 추진할 생각"이라는데 실무 담당자는 "처음 듣는 얘기"라 한다.

이 와중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조해녕 대구시장이 자기부상열차 시범사업 대구 유치를 위해 일본과 미국에 견학 갔다는 소식은 신선하다. 인천 대전 등지와 유치경쟁이 붙었다는데 지방분권 도시 대구가 밀릴 이유가 없다. 더욱이 대구는 2조5천억 원이 넘는 지하철부채를 직접 져 3조 원이 넘는 지하철부채를 건설교통부가 대신 떠맡아주고 있는 부산에 비해 정부에 '효자 도시'다. 이런 효자가 지하철 1호선, 2호선과 연결하는 자기부상열차 사업을 유치해 지하철 이용객을 조금이라도 늘려보려 안간힘을 쓰는 마당인데 제대로 설명하고 설득한다면 정부도 마냥 모른 체 하지 않을 게다.

조 시장이 견학가면서 자기부상열차 사업과 유관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건교부, 과학기술부 관계자와 함께 가지 않은 점은 아쉽다. 자비라지만 한나라당 소속 의원 1명은 동행하면서 말이다.

지금 공무원에게는 지방선거에 눈돌릴 시간이 없다. 제 일 하기에도 바쁜 너무나도 귀중한 시간이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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