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봉오리가 흰 속살을 드러낼때 집마당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나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개의 형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난 시절 개가 화면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대체로 우울하다. 1988년도의 개그림은 책상 뚜껑에 상다리를 붙인 오브제에 개를 그린 것이 눈에 띈다. 제목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80년대 대학생들은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과 불만으로 늘 데모를 하였고 데모의 부산물로 책걸상이 부러지거나 동강나기도 하고 불타기도 했다. 그래서 대학원 실기실 앞에는 이러한 물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이런걸 주워서 그 위에 작업을 했는데 이런 작업들의 제목이 '불탄 흔적 위의 삶' 혹은 '우리시대의 자화상' 등이다.
1989년도의 작업을 보니 개가 쪼그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제목이 '개같은 삶'이다. 이 시대에 작가로서 작업을 하기란 무척 어려웠을 시기로 작가란 모름지기 춥고 배고프고 물감 걱정을 해야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이상한 그림이 팔린다는 건 꿈에도 상상을 못해본 시기니. 색은 화려할지언정 마음은 얼어붙은 개 같은 삶의 시절이었으리라….
1992년도의 작업들은 곡예, 황무지 등의 그림에 개들이 등장하는데 밝은 표정의 개가 아니라 위험스럽게 줄을 타는 개머리 형상과 그로테스크한 인간을 위협하는 음흉한 개의 모습이 드러나는 그림들이다.
그림도 그리고 먹고 살아야하는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까 생각하다 결혼을 감행하였고 작업실과 살림집을 한몫에 구한다는 명분으로 시골로 생활터전을 옮겼으나 농촌의 삶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표현한 것 같다. 그 뒤로 간간이 개 형상을 그리곤 하였으나 특별한 의미를 둔 것 같지는 않다.
올해는 병술년으로 개에 대한 관심과 함께 드로잉과 페인팅을 시작했는데 인간들이 구경하는 울타리 내에서 치열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개의 처지와 이미지를 그렸다.
화가와 투견을 비교하면 인간과 동물이라는 관점만 빼면 별로 다른게 없는 것 같다. 화가의 삶이란 투쟁의 연속이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 인생 오십이면 지천명이라 다시 한 번 지난 시절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화가는 육십부터'라 했으니 앞으로 십 년은 더 지독스럽게 작업에 임해야겠다. 둥그런 링 속에 피터지게 싸우는 투견같이 말이다.
최근 작업 중 하나는 이러한 생각들을 제쳐두고 멍하니 앉아있는 개의 형상을 그린 것이 있다. 투견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그냥 막연하게 앉아있는 개의 형상은 이 시대의 화가들처럼 그렇게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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