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참을 수 없는 쇼비니즘

입력 2006-03-07 10:05:32

우리나라가 4천년을 훌쩍 넘긴 반만년에 가까운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미국대학 도서관이었다. 우연히 접한 책에서 한국이란 나라가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의 하나인 인디애나 크기만 하고 동 끝에서 서 끝으로 가는데 한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아주 작은 나라라는 구절을 발견하고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라 사이즈는 그렇다 치더라도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자랑스런 나라를 무엄하게도 고작 3천년이라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의 반응은 지나치게 '우리나라 좋은 나라' 로 교육 받은 세대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사실 대한민국은 정말 좋은 나라, 아니 좋은 나라라고 배웠다. 삼천리 금수강산이고, 물 맑기로 세계 으뜸이고. 그뿐인가, 가을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정말 축복 받은 나라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지나치게 모든 것을 우리 중심적으로만 몰아가려는 묘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최근 작고한 백남준을 기리는 미국언론을 보면 대부분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다. 기사 끝머리에 언급한 서울태생이라는 것이 전부다. 슈퍼볼의 영웅 하인스 워드에 대한 미 언론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우리 언론이 대규모 취재진을 보내 호들갑을 떨기 전까지는 절반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간단하게 취급하고 넘어갔다. 어디 출신이라는 것이 그리 중요치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검은 팔뚝에 드러난 라는 다섯 글자에 온 국민이 감격해, 마치 우리가 미 대륙을 정복한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었다. 워드열풍은 정말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혼혈인이 이 땅에서 태어나 우리말을 하고 김치, 된장을 먹으며 살아도 이방인 취급하면서, 도망치듯이 나가서 성공이라도 하면 갑자기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는 황당한 방정식이 통용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명예 한국인증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정말 그럴 자격이나 있을까?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나타난다. 쇼트트랙 선수들이 일본계 미국인인 오노를 제치고 금메달을 딴 것에 대해 진행자는 목메어 하고 해설자는 흥분을 부추긴다. 오노가 기자회견에서 우리 선수들을 일컬어 "거칠다(tough)"며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언론은 "거칠다"는 의미보다는 용케도 "tough" 의 또 다른 뜻인 "강하다"는 의미를 찾아내 "강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진정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들의 지나친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따지고 보면 4년전 올림픽에서 오노가 금메달을 받은 것은, 반칙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심판판정의 잘못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오노가 직접 금메달을 강탈해 간 것처럼 여전히 흥분하고 있다. 그뿐인가. 지난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이 골을 넣은 기념으로 오노를 비꼬는 이른바 '오노 세러모니'를 전세계인에게 자랑스레 선보였고 이를 지켜본 우리는 대부분 가상하다고 여겼을 뿐, 부끄럽게 여기는 이는 드물었다. 올림픽의 해프닝을 월드컵까지 끌고 온 우리 국민의 오노에 대한 적의는, 정말이지 다른 나라사람이 보기엔 소름 끼칠 만큼 극단적이지 않은가. 문제의 세러모니에 대해 오노는 오히려 "한국 선수들의 골 세러머니가 쇼트트랙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점잖게 대응했다.

이처럼 타민족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이면서 우리는 한류를 차세대 최대의 성장엔진으로 여기며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멀리는 로마부터 가까이는 미국까지 이들 국가가 성공한 이유는 타민족, 타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로마를 일컬어 맑은 물, x물 등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호수국가라고 지칭하지 않은가. 한류를 세계시장에 내다팔려면, 그래서 한국이 정말 우수한 나라임을 알리려면 지나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단순히 우리나라니까 좋은 나라이기 보다는, 장,단점이 공존하는 나라로 가르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것이니까 좋은 것이여" 라는 황당무계한 광고문구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아야겠다. 민족주의로 스스로를 옥죄이기에는 한국은 이젠 너무 커버리지 않았을까.

김동률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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