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친절한 판결문'

입력 2006-03-04 09:52:10

예전에는 한문(漢文)을 모르면 '무식쟁이'로 여겨졌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한자를 모르면 '행시주육(行尸走肉)'이라는 비웃음을 사기까지 했다. '살아 있는 송장이요 걸어 다니는 고깃덩어리'라는 혹평이었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우리의 법률용어는 대부분 어려운 한자말과 일본말투로 돼 있다. 법조문이나 판결문의 문장도 일상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다.

◇현직 부장판사가 어려운 판결문을 비판,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친절한 판결문'을 쓰자고 제안했다. 대구지방법원 이원범 부장판사는 '법률신문'에 실은 '민사판결서 작성 방식의 현황과 개선 방향'이라는 글에서 이같이 주장해 화제다. "사법 서비스의 최종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읽기 쉬운 판결문을 써야 한다"는 그는 아무리 명문장이라도 이해하기 어려우면 당사자와 관련자들을 설득시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판결문이 대부분 장황한 문체와 어려운 용어 일색이었음은 사실이다. 그렇게 쓰는 게 관행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짧은 문장을 써서 내용이 명확히 전달되도록 하고, 긴 문장의 경우 결론부터 밝히는 '두괄식' 문장을 쓰자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커 보인다. '사위(詐僞)'를 '거짓', '유탈(遺脫)'을 '누락', '해태(懈怠)'를 '제때 하지 않음' 등으로 쉬운 일상어나 풀어쓰기로 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법률은 전문가만이 이해할 수 있어서는 곤란하다. 모든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돼 있어야 하고, 법률 조문들도 간결하고 알기 쉬운 게 바람직하다. 재판관들이 길고 어렵게 판결문을 쓰는 게 법률 논리의 풍부한 펼침과 글의 권위를 위해서 필요했다면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부장판사는 "당사자들이 직접 소송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 소액사건에선 주문과 청구 취지를 혼동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판결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바뀌어야 한다. 더구나 여태 일본말투의 법률용어를 쓴다면 말이나 되는가. 문호 괴테는 "최고의 표현은 그것이 현실성과 결합할 때"라고 했고, 법학자 로스코 파운드는 "법률은 사회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조정돼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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