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대학교 교장 선생님 되셨지요?". 할아버지 손을 잡고 들길을 걷던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나를 알아보고 반가움을 전했습니다. 섣달 그믐, 그 때 난 논둑 길을 지나 실개천을 건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이를 만나러 누이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자주 오너라, 보고싶다"라는 말씀을 돌에 새겨두고 자식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어머니 유택에 가서 "저, 총장 당선되었어요"라고 인사를 드리고 산바람 속을 걷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대학교 교장 선생님! 눈이 까만 어린아이가 내게 건네준 이 말은 눈이 까맣게 살아 있었습니다. 갓 익혀낸 찐빵처럼 모락모락 김이 났습니다. 어린 날 내가 그러했듯 아마도 그 아이에게 대학교는 세상 중에서 가장 큰 세상, 교장 선생님은 높은 사람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을 터입니다.
고관대작의 축전도, 연구실 앞에 도열한 축하 화환들도 한 어린아이의 천진무구한 박수갈채를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날 난 세상에서 가장 크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축하의 메시지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살고 있는 마을이 궁금하시다구요? 그 곳에 오시려면 25번 국도를 이용해야 합니다. 승용차가 없으면 북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화령 장터에서 내려 시골 택시에 고단한 몸을 맡기시면 됩니다.
당신의 출발지가 대구나 서울이라면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쯤이면 하늘 아래 첫 동네, 상주시 화남면 임곡리에 닿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폐교가 되어버린 평온국민학교 근처에서 신작로를 버리고 산 속을 향해 십리 길을 더 오시면 됩니다.
아버지에게도 그랬고 어머니에게도 그랬습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춘궁의 그날, 하늘 아래 첫 동네는 버리고 떠나야할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꿈의 기와집을 지었다 부수고 부수었다 짓는데 한 평생을 보내셨고, 어머니는 창출을 고아 만든 보약을 이고 포항으로 동해로 열흘이나 보름씩 떠돌다 되돌아오시는 게 고작이셨습니다.
가난한 시절 이 나라 부모들이 다 그랬듯이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내게 삽과 괭이 대신 연필과 필통을 쥐어주셨고 나무지게 대신 책가방을 등에 메어주며 언젠가 그날 하늘 아래 첫 동네를 벗어나려 하셨습니다.
그 마을에 가보고 싶다구요? 솔직히 말해 25번 국도를 따라 열에 열 시간을 달린다해도 하늘까지는 여전히 구만리이고 우리나라 지도를 이 잡듯 쥐 잡듯 뒤진다 해도 하늘 아래 첫 동네는 이제 없습니다. 그곳이 그립다면 당신은 자동차를 버리고 낙타를 타야합니다. 언어의 낙타를 타고 맨발로, 그리고 아주 느리게, 흑백필름 같은 세월을 거슬러 와야합니다.
하늘까지 70리 밖에 남지 않는 그 마을에 들른다면 오랑캐꽃 정다운 논둑길 너머 초록이 풀어놓은 가느다란 실개천을 만날 수 있겠지요. 작아서 너무 작아서 군사지도에도 그려 넣을 수 없는, 눈감고 보면 핀셋트로 집어낼 만한, 그러나 내 마음 한 가운데 큰 소리로 흐르는 아름다운 도둑을 만날 수 있겠지요. '물풀 사이로는/ 물새가/ 새끼를 데리고/ 잘 다니는/ 좁은 길(오규원)'을 만날 수 있겠지요.
이 글의 독자인 당신에게 그런 날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땀이 베어 미끄러지던 고무신 신고 책보자기 울러 메고 양철 필통 달랑이며 뜀박질하던 바위고개 언덕길을 세월의 손 꼬옥 잡고 넘어서 오는 날 평생에 한번쯤 있으시기 바랍니다.
너무 늦지 마세요. 그 아이가 자라 대학교는 세상 중에서 가장 큰 세상도 아니고, 교장 선생님은 높은 사람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 오셔야 합니다. "아저씨, 우리 대학교 교장 선생님 친구 맞지요!" 눈이 까만 아이의 눈이 까만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비로소 하늘까지 70리가 잘 보일 터이기 때문입니다.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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