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책·문자·디자인 / 스기우라 고헤이 엮음·박지현·변은숙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밝은 노란색 바탕에 빨간 글씨가 쓰여진 표지의 이 책은 일본을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스기우라 고헤이(杉浦康平)가 한국·중국·대만·인도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과 모여 '아시아'를 주제로 나눈 대담과 정담을 엮은 것이다. 그 내용은 정치나 경제면이 아닌 아시아 각국의 문화적인, 그것도 책·문자·디자인이라는 시각문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스기우라는 '아시아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아시아 도상(圖像)의 재미를 전하기 위해 전시회를 열거나 책을 내기도 한 인물. 그런 그가 만난 6명의 디자이너들은 모두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작업을 꿋꿋이 해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진행 양상은 각자가 다르다. 한국의 안상수와 정병규는 한글의 힘에 주목하지만 출발점이 다르다.
안상수는 한글 창조가 천지인의 우주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데 주목해 한글서체를 고안했다. 고대 우주관과 서구 근대의 구성 어법을 통합해 한글을 재구축한 것. 이러한 노력 속에 문자는 단순한 시각적 소재가 아닌 오감을 담은 멀티미디어가 된다.
이에 반해 정병규는 한글과 한자의 관련성에 주목했다. 15세기 한글이 창제되기 전까지 사용된 한자의 상형문자 흔적이 한글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다고 본 것이다. 한글에 잠재된 상형성을 찾아내는 작업이 그의 디자인이다.
뤼징런(呂敬人)과 황융쑹(黃永松)은 중국의 전통에 천착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지만 뤼징런은 오늘날 희미하게 남아있는 전통적 수공예(서화·공예·제본기술 등)의 재생·발전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를 디자인 어법의 핵심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황융쑹은 혈(血)이나 기(氣)의 흐름,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활력,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과 그 연약함에 주목해 그것을 어떻게 보존해 미래에 전할 수 있을지 궁리한다.
인도 고전정신의 참뜻을 살리려 하지만 R K 조시는 고대인들이 수행을 통해 체득한 우주성, 신체의 각성을 자신의 일상에 되살리려 한다. 사람이 내는 소리의 울림과 우주 근원의 웅성거림을 일치시켜 신체 움직임에 실어 글씨를 쓴다.
그러나 키르티 트리베디는 고대 철학서나 현자들이 기록한 조형어법이라는 뛰어난 지혜를 현대에 되살리기 위해 IT시대의 기술을 구사하며 방법을 찾고 있다.
책의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중국어판·한국어판은 대담에 참여했던 뤼징런·정병규가 각각 자유스러운 스타일로 디자인을 했다. 같은 내용의 책을 한·중·일 세 나라마다 다른 언어와 디자인으로 읽을 수 있는 색다른 기회가 될 듯. 풍부한 도상 자료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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