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입력 2006-02-11 09:47:50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 제임스 E 매클렐란, 헤럴드 도른 공저 / 모티브 펴냄

17세에 문맹이었던 프랑스 농노 소녀 잔 다르크가 노련한 영국 장군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큰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뜻밖에도 전장에서 포를 설치하는 능력이 특히 뛰어나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당시까지 활과 석궁에 의존하던 구식전쟁에 대포라는 신기술이 등장했고, 잔 다르크가 이 신기술을 감성적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신세대였기에 가능했다는 해석이 나온다(잔 다르크 신드롬). 결국 그녀는 영국과의 백년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프랑스 왕국이 존속할 수 있도록 한 전쟁영웅이 되었다.

연대기에 묶여 역사적 사건을 훑다 보면 중세 유럽의 왕 한둘 정도나 전쟁영웅, 사상가 몇 명 정도를 아는 데 그치고 마는 수가 있다. 대신 세계사를 '과학과 기술'의 눈으로 살펴보면 역사의 흐름은 사뭇 달라진다. 박제된 듯한 세계사에서 드라마틱한 생동감을 얻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역사학자인 저자가 과학기술사 입문서로 다룬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는 바로 이런 점을 강조하는 책이다. 특히 과학이 진리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자로 군림하고 있는 요즘 과학과 기술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연은 과학과 기술, 조연은 정부(국가)와 산업이다. 시간적으로는 최소 5천년, 공간적으로는 지구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이 책은 강을 다스리고 피라미드를 건축한 '파라오와 기술자', 자연철학이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은 '천재적인 그리스인', 화약무기와 대양 항해기술을 기반으로 한 '유럽의 과학과 기술', 인간의 역사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산업혁명' 등 방대한 역사를 과학과 기술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 뉴턴, 갈릴레이 등 서구 과학자가 독점하고 있던 과학기술의 역사를 뒤집는다. 중국과 이슬람, 아메리카 등도 과학기술이 체계적으로 발전했고, 각각의 사회 체제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교과서 속 상식과는 다른 접근방식이다.

일반적으로 과학계가 진보를 거듭하던 19세기까지도 '과학'은 지식인의 영역이었고, '기술'은 교육을 받지 못한 장인들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 징집되어 포탄이 나르는 참호 속에서 죽어갔던 과학자들이 그 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징집을 면제받고 후방에 모여 기술자들과 비밀 임무를 수행, 원자폭탄을 탄생시켰다. 상대적으로 인색한 평가를 받았던 기술자들도 '연구개발인력'으로 이즈음부터 격상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론적인 연구와 실용적인 기술이 응용되면서 인류는 다시 한번 진보하게 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계기와 동력으로서 과학과 기술의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짚어주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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