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따라잡기-법 측면에서 본 양심적 병역거부

입력 2006-02-07 10:48:20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말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상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 내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결정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인권위의 권고는 최근 유사 사례에 대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법조계에서도 찬반 논란이 뜨겁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해 다수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관용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우리 사회가 소수의 의견에 대해 얼마나 관용적인가 점검해 보고, 민주 사회에서 소수의 의견을 어떻게 인식·처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 이슈의 배경

지난해 12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제26차 전원위원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 제19조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의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 내에 있다고 결론짓고,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병역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하게 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의 결정에 대해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일각에서는 헌법의 기본권을 인정한 당연한 결과라며 찬성을 표시하고 있는 반면 많은 국민들은 "그럼 군대는 누가 가느냐?"라는 반응과 함께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권위의 권고가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은 유사한 사례에 대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의 판결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 주요 논점

△ 양심적 병역거부의 정의

양심적 병역거부란 '양심적'이유로(종교적 신조나 반전사상 입장에서) 징집 등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병역거부는 초기에는 특정 종교(여호와의 증인, 퀘이커, 안식교 등)에 속하는 교인들이 종교적 신앙에 의해 병역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적 사상이나 철학적·윤리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대상은 군 복무 자체, 특정 무기의 사용, 군의 특정 제도, 특정 전쟁 등 여러 측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UN 인권위원회는 1987년, 1989년, 1993년, 1995년, 그리고 2004년의 결의를 통해 대체복무제도 실시를 권고한 바 있으며, 유럽의회 역시 수차례에 걸쳐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을 촉구해 왔다. 현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25개국이 대체복무제도를 인정하고 있으며 아시아권에서는 대만이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대체 복무제도가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병역 기피 또는 군무 이탈 등의 이유로 처벌받고 있다.

△ 찬반 논란의 핵심

논란의 핵심은 양심에 기초한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1항에 의해 입영 기피로 분류, 처벌되도록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헌법 제19조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가 오히려 하위법인 병역법 규정에 의해 침해되고 있으므로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면서도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병역거부가 과연 양심에 기인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인가, 양심에 기인한 것으로 인정되더라도 국방의 의무보다도 더욱 높은 가치의 것으로 보호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함께 검토해야 할 점은 바로 소수자에 대한 배려의 문제이다. 원래 법이란 다수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법에는 다수의 정치적 의사나 도덕적 기준, 즉 다수의 양심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거나 이행했던 다수 국민의 희생에 상반되는 소수 국민의 의사를 국가가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 하는 국가적·사회적 관용의 문제이며, 국가가 자신의 존립과 법질서를 유지하면서 개인의 양심도 보호하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 법적인 검토

△ 양심의 자유

헌법 제19조에는 '국가는 모든 국민이 양심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를 보호한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을 의미한다.

법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양심의 자유는 외부적 간섭 없이 개인의 내심 영역에서 양심을 형성하는 '양심 형성의 자유'와 그 양심을 외부로 표명하고 그에 따라 삶을 형성하는 '양심 실현의 자유'로 구분된다. 전자는 내심에 머무르는 한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기본권이지만, 후자는 법질서에 위배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어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이다.

△ 대체복무제도의 입법 의무

양심의 자유가 제한되는 경우에도 양심상의 갈등을 고려하여 의무를 면제하거나 대체하는 특례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즉,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양심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도록 대안을 통해서 개인의 양심과 법질서의 충돌 가능성을 최소화할 의무가 입법자에게 인정되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논의되는 것이 바로 대체복무제도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국가기관, 공공단체, 사회복지시설 등 공익적 업무에 종사하게 함으로써 양심의 자유와 병역 의무의 충돌을 해결하려는 대안이다. 현재 다수의 국가에서 헌법 또는 법률상 근거에 의거해 도입하고 있다.

대체복무제도 입법에 대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모두 헌법적 의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 안보상의 중요 정책에 관하여 결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과제로, 국가 안보 상황에 대한 입법자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며, 입법자는 이런 현실 판단을 근거로 헌법상 부과된 국방의 의무를 법률로써 구체화함에 있어 광범위한 자유를 가지므로 현 단계에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본 입법자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거나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 결론

법적 판단은 어디까지나 현상에 대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일 뿐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개념이 우리의 법질서 상 용납될 수 없는 범죄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모두 대체복무제도의 합리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에 대해 2004년 판결을 통해 사실상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가장 창의적이고 자유로울 20대라는 연령에서 2년간의 현역 군복무와 이후 8년간의 예비군 복무라는 엄청난 의무가 대한민국의 성인 남성에게 부여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체복무제도의 인정이 쉽지 않은 과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비양심적 병역거부'를 구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소한 양심적 병역거부란 개념을 인정할 수 있고 대체복무제도를 통하여 이런 사람들을 굳이 범죄자로 만들지 않고도 의무를 이행하도록 한다면 지금과 같은 무차별적 처벌에 대한 오해와 무지도 풀 수 있을 것이다. 대체복무제도란 인정의 폭이 매우 좁을 뿐만 아니라 병역 의무를 면제 시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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