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일어나요 그래야 또 봉사하죠"
이젠 남편(강성범·52)에게 가족에게 신경 쓰라며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내 얼굴만 겨우 알아볼 뿐, 정신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이다.집안일을 제쳐두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며 팔을 걷어붙이던 남편. 그는 지금 병상 위에 누워 혼자 힘으론 움직일 수도 없다. 지난해 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뒤 몸도 마비됐고 말도 거의 하지 못한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데 그 말이 믿기지 않는다.
1980년 문을 연 남편의 이발소는 손님들의 발길로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발 요금을 내는 손님보다는 공짜 손님이 더 많아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남편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불러들여 무료로 이발을 해준 것.
매주 한번 이발소 문을 닫는 날에도 남편의 일은 계속됐다. 동네 방범초소에 이발도구를 늘어놓고 가난에 찌든 아이들, 홀몸 어르신, 장애인들의 머리를 만져줬다. 우리 가족도 사글셋방(월 20만 원)에 사는데 남편은 집안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남편에게 '자기 가족도 좀 생각하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곧 포기했다.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덕분에 집안 경제는 내가 책임져야 했다. 식당에서도 일하고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1998년 어느 날 남편의 이발소에 상패가 하나 생겼다. 서구청에서 남편에게 '구민상'을 준 것. 평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남편은 무척 쑥스러워했다. 그 상 때문에 남편이 내게 숨겼던 사실을 알게 됐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학비를 조금씩 대줬던 것. 내 잔소리 때문에 그 일을 털어놓지 못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힘든 사람들을 돕는 데 열을 올릴까. 남편은 말이 없었지만 그 이유는 짐작이 간다. 자신의 고생스러웠던 과거 때문일 것이다. 시골에서 8남매 중 막내로 자란 남편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다니다 포기해야 했다. 그 뒤론 이곳 저곳 이발소를 전전하며 가위 쓰는 법을 배웠다. 가난을 직접 겪은 남편은 주위 사람들의 어려움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사실 남편이 쓰러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2년 뇌경색으로 몸져눕는 바람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아마 쉬는 날도 없이 너무 무리했던 탓인 것 같다. 남편의 오른쪽 눈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고 왼쪽 눈마저 침침해졌다. 더 이상 가위도 들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남편은 또 일을 벌였다. 이번엔 홀몸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몸을 씻겨주는 활동을 시작한 것. 몸에 무리가 간다며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몇 번 남편의 뒤를 따라나서 봤다. 남편을 반갑게 맞는 이들과 목욕을 시켜주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즐거워하는 남편을 보니 이해가 됐다. 왜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지. 남편은 행복해 보였다.
현재 남편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하다. 두 번의 뇌수술 후에도 마비된 몸은 좋아지지 않고 있다. 행여나 좋아질까 밤낮으로 옆에 붙어 몸을 주물러 주지만 아직 일어날 기미가 없다. 아들 녀석이라도 옆에 있으면 위안이 되련만 제 아버지가 쓰러지기 직전 군에 입대했다.
내 몸도 성치 못하다. 갑상선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쉽게 피로가 오지만 남편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쉴 수도 없다. 이미 주위에서 500여만 원을 빌렸다. 앞으로 남편이 일어나려면 얼마가 더 들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더 이상 기댈 곳도 없다.
신명희(47·여·서구 평리동) 씨는 곧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된다. 홀몸 어르신들이나 가능할 줄 알았는데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동사무소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지금 형편에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면 큰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남편이 일어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남만 돕다 자기 몸도 제대로 못 챙긴 남편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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