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일어나요. 애들이 기다려요"

입력 2005-12-21 11:02:57

내 아들 휘성(10·풍기초교 3년)이는 의사가 되고 싶어한다. 불쌍한 사람들을 공짜로 치료해 주고 싶단다. 휘성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나는 안다. 아빠 병을 고쳐주고 싶어서다. 주위 사람들이 뭐라 해도 휘성이는 아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여태껏 고생만 한 사람인데 이렇게 쉽게 보낼 수는 없다.

남편(문재현·39)이 쓰러진 것은 지난 6월이었다. 종종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쓰러지기 10일 전엔 안색이 너무 창백해 동네병원에 갔지만 두통약을 처방해줄 뿐이었다.

나도 큰 병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직장을 잃은 뒤 오는 스트레스가 심해서 머리가 아픈 것이라고 여겼다.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은 나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올해 결혼기념일에는 선물 하나 안 해줄 거냐'고 졸랐더니 잔업수당을 받아 반지를 사주겠다고 했었다.

무뚝뚝하고 숫기 없는 남편은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챙기는 것에 서툴렀다. 퇴근길에 술을 한잔 하고 들어와야 인형이나 꽃을 사들고 와 조용히 내미는 사람. 그런데 이번에는 순순히 약속을 했다.

하지만 결혼기념일인 지난 4월 18일, 남편은 일하던 인삼제조업체에서 해고됐다. 남편은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남편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직물공장에서 일하다 개와 염소를 키우는 조그만 농장을 열었었다. 하지만 사업수완이 없어서였는지 1년 남짓 만에 접어야 했다.

인삼제조업체에 취업한 것은 지난해. 남편은 보통 새벽 3시에 집을 나서 밤 9시나 돼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인삼밭에 나가 농약을 치고 인삼을 가꿨다.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됐다. 온몸이 쑤셔서 옆에서 주물러줘야 잠이 들었다. 작업인부들 중 반장으로 일하면서 회사 간부들과 인부들 사이에 중재역을 맡은 탓에 신경 쓰는 일도 많은 모양이었다.

은근히 걱정이 되긴 했지만 갑자기 쓰러질 줄은 몰랐다. 족구, 축구를 즐기며 동호회 활동까지 할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다섯 차례의 수술을 받은 뒤 건장했던 남편은 바짝 말라버렸다. 이후 우리 생활은 변했다. 나는 낮에 건강원을 운영하고 저녁에는 인조옷감을 짜는 공장에 다녔는데 이마저 하지 못하게 됐다. 남편 병간호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8천만 원에 이르는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기에 전세보증금도 빼야 했다. 얼마 전엔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됐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휘성이와 영은(7·여)이가 눈에 밟혔다. 침착하고 듬직한 휘성이를 보고 있으면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학교 선생님은 휘성이가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단다. 영은이는 미운 일곱 살인 데다 고집도 세고 욕심도 많다. 하지만 휘성이는 동생 응석을 다 받아준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누워있는 남편에게 물어보지만 몇 마디 웅얼거림만 돌아올 뿐이다.

형편이 되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다는 성경남(38·여·영주시 풍기읍) 씨. 성씨는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결혼기념일 선물 같은 거 필요 없어요. 돈도 안 벌어다 줘도 되고요. 제가 벌 테니까요. 제발 일어나기만 해요. 아이들이 아빠를 기다리잖아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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