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화가신용협동조합

입력 2005-12-12 08:51:59

노동을 예술처럼 하라고 그랬다. 우리는 예술을 노동처럼 한다. 그러나 보장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세금은 다 거두어가면서 작가에게 돌아오는 건 허탈한 삶뿐이다. 구 소련에서는 시인들을 아무런 생산능력이 없는 인간쓰레기로 취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추방하였다. 하나 그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훌륭한 시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자. 예술가들의 권익을 보장해 줄 그 무엇이 있는가? 한 마디로 없다. 작가 개인의 능력이나 인간 서로 간의 소통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이다. 기획력의 부족으로 작가를 더욱더 비참한 현실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제 우리들의 능력으로 우리들의 삶을 대변할 그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권력에 대한 봉사나 재력에 의한 아부가 아닌 힘의 예술로 우리를 지켜나가야 한다.-2003. 5. 나의 글 '화가신용협동조합전'에 부쳐

영국 현대미술이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는 이유를 늘 궁금하게 여겼는데 '월간 미술' 12월호에 실린 경희대 최병식 교수의 글을 통해 답을 얻었다.

최 교수의 글에 따르면 1984년부터 개최된 순수예술 지원상 '터너 프라이즈'가 그 중심에 있다. 딜러, 미디어가 공조해 만들어내는 스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뉴욕 위주로 흘러온 현대미술의 편향적인 흐름을 넘어선 것. 오늘날에는 영국이 주도하는 첨단 현대미술의 동향을 이해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 20여 년간 영국 현대미술이 성장해오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데미안 허스트다. 그는 1988년 허름한 공장지대인 도클랜드에서 프리즈전을 연 골드스미스대학 학생 16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직접 전시 큐레이터를 맡으며 작가가 직접 기획, 공장지대의 넓고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하여 적지 않은 관객을 불러들였다. 공간이동을 통한 프로젝트 전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고도의 문화적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충격적인 매체사용이나 작업 내용으로 관람객의 폐부를 자극함으로써 유명해졌지만 기존의 경직된 시스템을 무시하고 한층 유연한 프로그램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젊은 작가의 벤처전략이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영국에서는 장르와 형식을 뛰어넘는 교육의 변화와 20여 년간 비약적인 슈퍼스타 등장, 애호층 확대 등의 현상이 진행 중이다. 대구에서도 많은 예술적 움직임을 꿈꾸고 있으나 기폭제가 없다. 경직된 시스템에서는 젊은 작가들이여! 그대들이 분연히 일어나는 수밖에 없다. 화가신용협동조합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이 조합도 그대들이 만들어라. 나도 기꺼이 동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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