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慶州)국립박물관에 들어서면 왼쪽 뜰에 말 없이 서 있는 '목 없는 석불(石佛)'들을 만날 수 있다. 이를 보는 대부분의 관람자들은 훌륭한 조각품이 훼손돼 애석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석불을 만들었던 신라 석공들은 석가모니의 목이 잘렸다고 통곡할지 모른다. 이처럼 한 가지 대상에서 받는 느낌이나 가치관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경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경주는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이다. 고도 경주에 대해서 가장 큰 애정을 보인 역대 지도자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월성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전력이 곧 국력이 되는 미래에 대비하면서도 이곳을 역사 문화 도시로 보존하기 위해 '올드(old) 경주, 신(新) 경주' 정책을 펴려 했었다. 유적이 밀집해 있는 구(舊) 시가지의 개발을 엄격히 제한하고 원하는 주민들은 개발할 신주거지로 옮겨주려던 계획이 바로 '올드 경주, 신 경주' 구상이었다.
◇이는 프랑스가 파리의 문화 예술 유적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구시가지를 개발 제한 지역으로 묶고, 대신 신 시가지(라데팡스)를 발전시킨 것과 닮은 꼴이다. 그런 경주가 박 전 대통령의 급서 이후 국가 차원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25년여 동안 홀대받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들은 고도(古都)라고 자기 집에 못 하나 박지 못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고 뚜렷한 지원책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자연히 무분별한 개발 욕구만 난무, 경마장을 유치하느니 하는 혼란과 갈등에 빠졌다. 묘지석이 나온 고분을 뭉개고 학교를 들어서게 허락한 것도, 왕릉 바로 옆에 식당이 들어서게 된 것도 개발 욕구의 부작용이다. 경주의 방폐장 유치도 오랜 소외 끝에 뭉쳐져 나온 개발 욕구의 표현이었다. 방폐장 유치에 성공하면서 경주는 활기를 띠고 있다.
◇경주 시민들이 문화 유적으로 인해 얼마나 생활의 불편을 겪고 재산권 행사에 피해를 당했으면 방폐장을 유치하겠다고 나섰을까. 어떻든, 고도 경주에 방폐장이 들어선다면 국내외 문화인들은 속으로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물릴 수는 없다.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경주 방폐장의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 봉길 방폐장 혹은 제 3의 이름을 붙여서라도 경주 이미지에 먹칠이 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최미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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