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중첩증 앓는 정유라 양

입력 2005-12-07 09:05:04

유라(10·여·경북 봉화초교 4년)가 5년 만에 내 품으로 돌아왔을 때 이 것, 저 것 해주고 싶은 것도 많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해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 딸은 2주일 만에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져 버렸다. 한창 친구들과 장난치며 어울릴 나이임에도 지금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내 딸. 내 곁으로 오면서 학교도 옮겼지만 친구를 사귈 시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는데….

유라는 5년 전 이혼한 뒤 아이 아버지가 키웠다. 내가 키우고 싶었지만 아이 아버지 역시 유라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

가끔씩 연락을 하긴 했지만 아이 아버지가 새 가정을 꾸린 터라 이마저 자제해야 했다. 보고 싶지만 많이 참았다. 유라 입장도 생각해줘야 했다. 어린 유라가 헤어진 부모 사이에서 처신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나 역시 재혼해 아들(3)을 낳았다. 새로 생긴 시댁 식구들은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남편 역시 착한 사람이었다. 충분히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 허전함은 남아 있었다. 내 첫 아이, 유라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달초 유라가 내 곁으로 왔다. 전 남편의 사정이 어려워 키우기 힘들었던 것.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시댁 식구와 남편도 유라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함께 사는 시어머니가 종종 '엄마와 떨어져 지낼 아이가 외로울 테니 언제든 데려왔으면 좋겠다'고 하신 것도 힘이 됐다. 남편이 4대 독자일 정도로 손이 귀한 집안이라 시댁 식구들은 모두 유라를 예뻐하며 품에 안았다.

처음 새 식구들 속으로 들어왔을 때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린 유라는 기가 많이 죽어 있었다. 말은 안했지만 이 것, 저 것 눈치를 많이 보는 듯 했다. 아이가 불안해하는 것을 안 어른들은 안쓰러워하며 편하게 지내라고 달랬다. 충분히 유라 혼자서 학원에 다닐 수 있었지만 남편은 따라다니면서 직접 챙겨줬다.

주위의 보살핌 덕인지 유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는 듯 했다. 나도 한시름을 덜었다. 하지만 행복감도 잠깐뿐. 유라가 다시 찾은 평온은 쉽게 깨져버렸다. 지난 달 중순 아이를 깨워 아침밥을 먹이려고 들여다보니 아이 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것이 아닌가. 안동의 한 병원을 급히 찾았지만 대구의 더 큰 병원으로 데려가 보라는 말이 돌아왔다.

이후 유라는 병실 침대 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사의 진단은 '간질중첩증'. 간질 발작이 30분 이상 계속되거나 의식회복 없이 연속적으로 발작이 있는 경우에 붙이는 병명이란다. 원인은 알 수 없다는 데 의식불명상태인 유라의 작은 몸은 지금도 수시로 경련을 일으킨다. 말수가 적고 속이 깊은 아이여서 주위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렸는데 지금은 내가 곁에 있어도 아무 말이 없다.

시댁 식구들과 남편에게 정말로 미안하다. 유라 동생을 돌보는 일도 일흔이 넘으신 시어머니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힘겨워 하실 것이 눈에 선한데도 시어머니는 자신보다 유라와 내 걱정을 하신다. 다들 아이만 나으면 괜찮다고 하지만 20여일 만에 치료비가 500만 원을 넘었다. 넉넉지 못한 주위 사람들에게 기댈 형편도 못된다. 병원에선 일단 지켜보자고 하니 언제까지 이대로 버텨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신영애(36·여·경북 봉화군) 씨는 건강했던 아이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잔병치레를 않던 유라는 커서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유라는 제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까요. 느끼고 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는 것이겠지요? 당장 말은 못해도 괜찮습니다. 유라와 눈이라도 맞출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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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영애(36·여) 씨가 의식을 잃은 채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버티고 있는 딸 유라(10) 양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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