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사이/한나 아렌트 지음/서유경 옮김/푸른숲 펴냄
'아렌트 르네상스'.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여성 정치철학자로 평가받는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회와 연구자들의 움직임을 일컫는 말이다. 서구 학계를 당혹케 했던 아렌트의 '이설(異說)'들이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논쟁을 자극하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아렌트는 '무서운 세기', '폭력적인 세기'로 불리는 20세기를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살다가 쓰러져간 학자였다. 나치를 거부한 유태인 망명자, 좌우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한 철학자, 하이데거의 연인이기도 했다. 독일 현대철학의 거장 마르틴 하이데거와 칼 야스퍼르에게 배우고 1941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내년으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그녀의 저서 '과거와 미래 사이'는 2천500년 서구 지성사를 넘나들며 현란한 사유의 경지를 펼치고 있다. 오늘날 정치적 담론의 공간을 구성하는 전통, 역사, 권위, 자유 등 개념의 기원을 추적한다. 이런 핵심 개념들이 전통적 의미를 상실한 결과 근대사회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게 그녀의 논지다.
그녀의 사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 '과거의 현실 속에서 만났던 사람, 행위, 경험들이 탈(脫)시간화해 저장된 이미지들의 창고'가 기억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런 기억의 재배치를 통해 자신이 선정한 여덟 가지 핵심적인 개념의 본래적 의미와 현재의 시공간 속에 놓여진 의미 사이에 발생하는 균열에 그는 주목한다. 이른바 옛것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다.
이 책에서는 전통과 근대, 역사개념, 권위, 자유란 무엇인가 등으로 현상을 조명하고, 교육, 문화의 위기, 진리와 정치, 우주정복 등 현실적 문제를 직접 적용해보는 일종의 실험적 사례들로 구성하고 있다. 앞의 4편이 다소 부담이 가는 정치적 철학의 영역이라면 뒤의 4편은 현재적 유용성을 드러내며 실타래 풀어내듯이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다.
그녀는 미국의 교육위기에 대해 아이들을 개별적인 사회구성원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으로 취급해 성인의 사회에서 집단적으로 배제하고, 실용주의를 모토로 내걸어 교육의 장을 기술습득의 현장으로 변질시켰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달 정복에 대해서도 "인간의 우주 정복은 인간의 위업을 드높였는가 아니면 떨어뜨렸는가"라고 묻는다. 그녀는 그것이 표면상으로는 인간의 승리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폐해 또한 적지 않다는 입장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경험을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지배적인 위치에 서게 되고, 또한 과학은 보통사람들의 경험을 증대하거나 질서화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아렌트의 사상은 종종 이상론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도 받지만, 인간의 정치행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하는 데 그 이야기의 효용성이 있다. 진리와 정치의 긴장 관계를 제시하는 한편 건강한 공생의 필요성 역시 함께 역설한다. 물론 그녀는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위기를 위기로 느끼게 하는 것으로 그녀의 사유는 책무를 다한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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