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고가문의 유일한 상속녀, 가정에서는 순종적 아내, 정치에서는 뛰어난 위정자, 완벽한 18세기의 여왕'.
1780년 11월 29일 숨진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를 칭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마리아 테레지아는 여제 등극부터 시작해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테레지아는 아버지였던 카를 6세가 아들 없이 죽자 1740년 오스트리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황제로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713년 국본조칙(프라그마티셰 장크치온)을 통해 여성의 왕위계승이 허용됐지만 왕의 사후 문제가 발생했다. 바이에른 선제후 카를 알베르트(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가 이의를 제기하며 자신이 오스트리아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여러 제후들이 합스부르그가(家) 계승 다툼을 벌였고 결국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1740~1748)이 벌어졌다. 프랑스, 바이에른, 에스파니아, 작센, 프로이센 등은 강력한 오스트리아의 성장과 여제의 등장을 막기 위해 동맹을 결성해 오스트리아를 쳐들어왔다.마리아 테레지아는 이런 시련을 딛고 일어서 든든한 내정을 펼쳤다. 역경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담금질했던 것이다.
▲1983년 '88 서울올림픽 휘장과 마스코트 발표 ▲2002년 데이콤, 한전 자회사 파워콤 인수.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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