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볕살이 따사로워지고부터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광들이 들어오고 오가는 길에 제 각각인 사람풍경을 보면 저절로 즐거워진다. 처음엔 집에서 가까운 대학의 캠퍼스를 걸으며 젊음을 수혈 받는 듯 마냥 좋아하다가 근래에는 친구들과 함께 먼데 있는 산으로도 자주 떠난다.
산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우린 늦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다. 빠알간 산수유와 아그배,작살나무의 보랏빛 열매는 제 살을 다듬은 듯 둥글게 궁굴려놓아 눈길이 끌렸다. 나무들은 예쁘게 빚은 고것들을 아끼지도 않고 산새들의 먹이로 내어놓은 것이다.
낙엽 쌓여 푹푹 빠지는 길가로 마냥 걸었다. 한참을 올라가니 커다란 연못이 우릴 반긴다. 수면에 물무늬를 만들며 노니는 철새 떼들이 보란 듯이 유유히 날아올라 다시 못 중간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앉는 정경은 가히 장관이다.
길가엔 샛노란 달맞이꽃 몇 송이가 철늦게 피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그 옆 따사로운 햇살이 뒹구는 곳에는 아직도 망초꽃과 토끼풀이 한데 어우러져 피어있다. 마치 무리에서 낙오된 지각생 같아서 끝까지 버티라는 응원을 하며 사진기에 담아주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풀, 덩굴, 나무들이 저마다의 방법대로 씨앗 퍼뜨릴 준비를 다 해놓았다. 바람결에 멀리멀리 실어보내기, 어디에든지 찰싹 달라붙여 떠나보내기, 더러는 새의 먹이가 되어 더 먼 곳으로 보내어질 테지.
유난히 따사로운 가을볕에 우리의 마음귀퉁이라도 영글어지면 참 좋겠다. 함께 자연 속을 걸으니 엔돌핀이 생겨나고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듬뿍 마셔 한결 맑아진 기분이다. 알게 모르게 머리를 짓누르던 온갖 상념들을 소슬바람에 실어 보내고 가끔 깜짝 출연하는 다람쥐와 산새들을 눈요기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내려왔다.
모두들 건강에 관심이 높아져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전에 미리 자연에서 심신을 치유받는 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주위에 아프던 사람들이 몇 년을 걷고 나서 괜찮아졌다느니, 친척 누군가도 등산을 하다보니 건강을 되찾았다는 얘기들로 이어졌다.
본디 자연에서 왔기에 자연이 가장 능력 있는 치료사가 되는 법, 나이 들어감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건강 상태는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는 지론이다. 누구든지 안 아프고 살아가면 좋으련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아프고 다치고......
남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때는 그저 무덤덤하다가 내 가족이나 자신이 아플 때는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가끔씩 아프면 어떠랴. 평소엔 눈 뜨고 있어도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 어떤 아픔으로 인해 섬광처럼 보이게도 되니 말이다. 그래서 남의 사정도 알게 되고, 무작정 달려가던 길에 쉼표 하나 찍는 여유도 찾게 될 텐데.
움켜쥐고 있던 이파리와 열매들 다 내려놓고 자유로워진 나무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나무를 키우던 산이 그 어떤 굴레를 벗은 듯 묵직해진 모습을 보며 우리도 잠시나마 집착과 욕심을 덜어내게 되어 한결 가볍다. 그러니 자연은 쳐다보기만 해도 가르침을 주는 말없는 스승이다.
거리, 들판, 강, 산이 철따라 만들어놓은 그때마다의 풍경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 이젠 걷기운동을 계속할 것이다. 걷고 또 걸으며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나의 속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 또한 기쁨이며 건강은 덤으로 얻는 열매일지도 모른다.
날마다의 걷기운동, 두 발을 내딛고 두 팔을 흔들 때마다 온몸이 자연과 교류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몸의 주파수는 좋은 파동을 일으키고, 심신의 아픔도 조금씩 치유되리라.
김경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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