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수돗물에 불소를 집어넣는 문제를 놓고 뜨겁게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열린 우리당의 장향숙 의원이 이번 정기국회에 구강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후 가열되고 있다. 논쟁의 양상은 1998년 대구의 환경 관련 인문잡지 '녹색평론'이 처음 수돗물 불소화의 위험성을 알린 이래, 수돗물 불소화 찬반양론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계속될 뿐 논의의 발전이 없는 상태이다.
그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는 독성이 강한 물질인 불소를 수돗물에 집어넣어 모든 사람이 먹도록 하겠다는 정책이라면, 그 위해 가능성에 대한 철저하고도 충분한 사전 기초 조사를 한 뒤,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한국에서는 보건복지부와 일부 치과의사들의 성급한 주장만 있을 뿐이지 장기간에 걸친 기초 조사가 전무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겠다. 불소에 의한 만성적인 건강 장해와 생태계 피해에 대한 조사를 하려면 적어도 10∼20년 이상의 추적 조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불소화 정책이 오랫동안 시행되고 있는 도시가 여럿이 있지만 그와 같은 장기간에 걸친 기초 조사는 아직껏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수돗물 불소화 정책의 근거로 흔히 제시되는 미국의 경우에도 수돗물 불소화의 안전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기초 조사가 지금까지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최초로 불소화 정책을 시범적으로 시행한 도시는 미시간 주의 그랜드 래피즈이다. 본격적인 불소화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적어도 15년간 추적 조사하여 비불소화 지역인 머스케건과 비교를 하기로 했던 원래 계획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과 2년 만에 폐기되고 1947년 머스케건마저 불소화해버려 비교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수돗물 불소화 역사의 시작이다.
수돗물 불소화 논쟁이 공전하는 둘째 이유는 수돗물 불소화 추진세력의 완고함 때문이다. 수돗물 불소화 정책을 중단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수돗물 불소화 정책의 원조격인 미국에서조차 불소화의 위험성과 문제점에 대한 논란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도 이들은 이에 대해서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불소화 정책을 추진하는 세력들은 오로지 수돗물 불소화 정책의 시행주체인 미공중보건국의 공식적인 지침만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 뿐, 최근 들어서 더욱 거세지고 있는 불소화 정책에 반대하는 미국 내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미국 환경청(EPA) 노조 소속 과학자들은 "지난 10년 이상 불소화에 관한 연구결과들을 검토한바 불소화로 인한 이익은 거의 없고, 부작용은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면서 수돗물 불소화 정책을 중지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가장 싼값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으므로 수돗물에 불소를 집어넣어야 되겠다는 논리는 실상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경제제일주의의 편의성에만 초점을 맞춘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와 소수의 전문가가 주도해 개발과 성장을 거듭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논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금처럼 인간의 삶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겸허한 자세이다. 그것은 전문적인 과학 기술의 적용이 현실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겸허함이다. 수돗물 불소화로 인해서 생기는 것으로 의심되는 반점치, 골육종, 지능저하, 중증골격불소증 등의 치명적인 질병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는 태도야말로 우리에게 요청되는 자세임이 분명하다. 수돗물 불소화 정책의 명분으로 삼는 저소득층, 장애인 계층은 더더욱 수돗물을 피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수돗물 불소화는 이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인권과 관련된 문제다. 먹기 싫은 사람에게는 먹지 않을 권리를 인정해주는 사회, 그것이 민주사회이다.
이승렬 (영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