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변신을 꿈꾸다

입력 2005-11-19 13:37:39

슬리퍼의 외출. 실내용이라고만 알고 있던 슬리퍼가 은근 슬쩍 문밖으로 외출을 시작했다. 대구의 도심 동성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곳에서도 슬리퍼패션이 유행이다. 중·고교 학생들이 교복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등하교를 하는 것도 다반사. 이들은 간단한 동네 외출은 물론 친구집에 갈때조차 슬리퍼를 신는다. 그러면서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다. 요즘처럼 추워진 날씨도 게의치않는다. 이쯤이면 슬리퍼에 날개를 달았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 젊은이들은 왜 어디에서나 신을 정도로 슬리퍼를 애용할까.

■신어보니 '편하네!'

대구 ㄷ중학교 2학년 남녀 각 1개반씩 슬리퍼에 관한 짧은 설문조사를 했다. 전체 75명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61명의 학생들이 '운동화는 답답하지만 슬리퍼는 편하고 자유롭다'고 답했다. 이들 중 등·하교시 또는 외출시 슬리퍼를 신고 나간 적이 있는냐는 질문에는 남학생 30명, 여학생 26명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하교때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3만 원이 넘는 패션 슬리퍼를 2켤레이상 갖고 있는 학생도 12명이나 됐다.

'발에 예쁜 매니큐어를 바를 수 있다', '1초안에 벗었다 신었다 할 수 있다', '신발끈은 풀어지면 귀찮지만 슬리퍼는 그런 걱정이 없다' 등 슬리퍼의 장점을 나열한 여러 가지 얘기들도 나왔다.

슬리퍼를 신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왠지 껄렁해보여 좋다는 의견도 의외로 많았다. 고상준(16·ㄷ중 3) 군은 '슬리퍼 맨'이란 별명답게 슬리퍼예찬론자다. 운동화를 신으면 발에 압박을 많이 받아 답답하다는 고군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다니면 자유인이 된 것 같다"고 했다. 학교에서 '모범생'이라 불리는 강선우(18·가명· ㄷ고 3)군도 "모든 것을 규제하고 통제하려는 학교 및 사회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도 있다"며 "교복에 슬리퍼를 신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작은 일탈을 즐기는 것으로 꼭 나쁘게만 보지않았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30~40대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에게는 쿠션, 지압 등 건강용으로 나온 신상품들이 인기다.

■슬리퍼도 '어엿한 패션'

편해서 신는다지만 슬리퍼도 패션이다. 어엿이 멋을 내는 소품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어느덧 젋은 남성들에게 니트, 힙합바지 차림에 모자를 쓰고 패션용 슬리퍼를 신는 것은 하나의 정형화된 옷차림이 됐다. 20대 여성들은 굽이 높으면서도 꽃무늬 등으로 예쁘게 디자인된 슬리퍼로 한껏 멋을 부린다. 가벼운 외출용으로 슬리퍼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

특히 여중·고생들은 시트콤, 드라마 등에서 연예인들이 신는 슬리퍼에도 관심이 많아 특정상품이 슬리퍼계를 평정하다시피 유행이 되기도 한다.

5만 원 정도인 유명상품 슬리퍼를 2개나 갖고 있는 김선이(17·가명·ㄱ여고 2) 양은 "슬리퍼는 여름 뿐 아니라 가을, 초겨울에도 어울리는 패션"이라며 "발 맵시를 뽑는데도 좋고 외출용으로 나오는 슬리퍼도 많다"고 예찬했다.

계절따라 슬리퍼를 바꿔 신기도 한다. 여름에만 슬리퍼를 신는다는 선입견도 바뀌고 있는 것. 패션슬리퍼만 7켤레라는 이수영(25·여·대구시 중구 대신동) 씨는 "옷에 맞춰 슬리퍼를 신기 때문에 값싸고 다채로운 제품을 많이 구입했다"며 "분위기에 맞춰 슬리퍼를 골라 신고 외출한다"고 밝혔다.

'코코 박동준 패션' 박동준 디자이너는 "슬리퍼는 이제 실내에서만 신는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계절별로 신제품이 나올 정도로 다양화됐다"며 "미국 뉴욕, 유럽 등에서도 스니커즈, 슬리퍼 차림은 한때 최신유행의 선두주자였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 여고생들이 예쁜 슬리퍼를 신은 채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흥겨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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