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짝퉁과 독보리

입력 2005-11-18 11:53:55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 '짝퉁'이 넘쳐나는 시대다. 짝퉁은 브랜드에 대한 대중들의 '날조된 기호'와 '소비 쏠림'이 나은 찌끼가 아니던가. 물론 짝퉁 중에는 명품보다 더 명품 같은 이른바 SA(스페셜A) 짝퉁도 있다. SA짝퉁 제품을 명품 판매점에 가서 A/S를 받아도 직원조차 까맣게 속는다고 한다.

짝퉁엔 물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량 소비주의라는 현대인들의 기호를 업고 '짝퉁 인생'들도 덩달아 인기다. 너훈아, 조형필, 하춘하, 현찰…. 라디오를 틀면 3김 등 유명 정치인들의 짝퉁 목소리 즉 성대모사가 전파를 탄다. 그러나 이 같은 짝퉁 인생들은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대리 만족 수준을 넘어서 그 자체로서 충분한 소비성과 상품성을 지녔다.

짝퉁 인생들을 그래도 알고 속으니까 재미라도 안겨준다. 정치인과 권력가 가운데서도 '짝퉁'들이 많다. 이 짝퉁들은 스스로 명품임을 자처하기 때문에 불량식품보다 해악이 크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 개념 없는 권세가들을 '무뇌아'(無腦兒)에 비유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146.5m, 밑면 한 변의 길이가 230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이다. 평균 2.5 t의 돌 230만 개로 구성돼 있는 이 석조물을 쌓는 데 10만 명의 노예가 20년에 걸쳐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라미드에 대해 사람들은 "찬란한 문화유산' 운운하며 찬탄을 금치 못하지만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피라미드를 '추한 덩어리'라고 표현하며 이렇게 비꼬았다.

"피라미드는 노예로 전락한 백성들의 유산이다. 피라미드의 용도가 무엇이냐고? 군주나 총독 등의 미라를 작은 방 속에 보존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천 년이 지나면 미라를 다시 찾아와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육신이 부활하기를 기대하며 시신에 방부제를 바르면서 어찌하여 뇌만은 제거했을까? 권력가들은 뇌가 없이 부활해야만 할 중요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짝퉁 정치인들의 뇌에는 자신들 때문에 유권자들이 입는 피해에 대한 감각 회로가 없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십수 년 전 국내에 개봉한 영화 제목처럼 'No Brain, No Pain'(뇌가 없어 고통도 없다)인 격이다.

짝퉁 정치인들은 자체 상품성보다는 '브랜드'(당적)나 지역감정, 천박한 포퓰리즘에 기생하려 든다. 이미지에 의존하게 되는 대의 정치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짝퉁 정치인들을 가려내기란 정말 힘들다. 짝퉁 정치인들 중에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고품질 이미지로 포장하는 데 능수능란한 이도 있다. 뽑아놓고 나니 무슨 사고를 칠지는 시쳇말로 며느리도 모른다.

짝퉁 정치인들을 솎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해서 함량미달의 짝퉁 정치인들을 골라내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에 따른 피해는 유권자들이 고스란히 돌려받게 된다. 정치판이 3류, 4류화된 책임에서 유권자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질 민주체제가 수립돼 천한 선동꾼들이 판을 치던 아테네 정계 모습을 안티스테네스는 다음과 같이 풍자했다. "농부는 곡식 가운데 독(毒)보리를 열심히 골라낸다. 그런데 정치판에서는 참으로 기괴한 현상이 벌어진다. 천하고 추하며 극도로 못된 자들이 끼어있어도 그들을 가려내어 내치지 않는다."

짝퉁 상품은 저렴하지만 짝퉁 정치인들에게는 그런 최소한의 미덕도 없다. 시선을 안으로 돌려보자. 오늘날 대구'경북의 사회'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진데에는 짝퉁 정치인들의 무능력과 무소신도 원인을 제공했다 아니할 수 없다. 깃발만 꽂으면 입성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짝퉁 정치인들에게 유권자들이 제대접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제는 브랜드(정당)만 보지 말고 상품성도 꼼꼼히 따져 볼 일이다.

라이프취재팀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