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나의 삶-1년만의 위기-사라호 태풍

입력 2005-11-14 11:42:49

화성산업은 창업시부터 울릉도 도동, 저동항 방파제 공사를 하고 있었다. 회사의 기틀을 차차 잡아가던 중, 창업한지 꼭 1년이 되던 1959년 9월, 엄청난 시련과 위기가 찾아왔다. 우리나라 기상관측 사상 가장 큰 태풍이었던 사라호가 덮친 것이다. 수 많은 농경지가 유실되고, 도로, 교량 등 재산상의 손실은 물론 사망'실종자가 840여명, 이재민이 37만 명이 넘는 실로 엄청난 재앙이었다.

우리 회사는 울릉도 저동항 방파제공사와 불국사-석굴암간 도로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태풍이 경상남'북도로 지나갔기 때문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공사가 80% 가량 진행된 불국사-석굴암 도로는 유실되었고, 울릉도 현장의 선박과 장비는 어찌 손 써볼 엄두도 못 내고 바다에 수장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그 엄청난 재난에 나는 넋을 잃었다. 자본금이 1천30만 원이었던 회사의 피해는 자본금의 열 배가 넘는 1억5천여만 원에 이르러 파산지경에 다다랐다. 설상가상으로 내무부(건설국)에서는 우리가 하던 저동 방파제 공사를 당시 전국 1위의 대기업에 넘기라 했는데, 당시 자유당 말기에는 '4인조'다, '6인조'다하며 고위층에서 공사를 좌지우지 하다시피 하던 시절이었다. 지방의 중소기업이 그런 큰 재난까지 당했는데, 공사를 계속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고 목이 메인다. 그러나 그렇게 주저 앉았다면 오늘 날의 나나 화성산업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건진 장비와 뱃자리(방파제가 없던 때라 배를 땅 위로 끌어 올려두는 곳) 등을 넘기는 대가로 2천여만 원을 받았다.

이 뼈아픈 경험을 교훈삼아 새롭게 시작했다. 저동항 방파제 공사는 그렇게 포기해야 했지만 울릉도와 동해안 지역의 태풍피해복구 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각종 항만과 방파제 공사를 하면서 습득한 노하우와 자신감으로 많은 태풍피해 복구공사를 했다. 사라호 태풍으로 인해 다른 회사에 넘겨주었던 저동항 방파제공사는 훗날 1986년 태풍 '애미'가 강타하면서 유실된 것을 우리가 완벽하게 복구공사를 하였는데, 당시의 방파제 공사로는 최대인 60t TTP(파도의 파력을 분산시키는 콘크리트 구조물)를 제작, 시공하였다. 타의에 의해 우리가 완성하지 못한 채 다른 회사로 넘겼던 그 공사의 복구를 보란 듯이 잘해내어 정부로부터 산업포장까지 받았는데, 그렇게 해서 30년 전의 회한을 풀 수 있었다.

울릉도에 가면 화성공원이 있다. 긴 세월39년간 대역사(大役事) 끝에 울릉도민의 숙원사업이었던 울릉일주도로를 화성이 완공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공원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주민들이 화성공원이라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화성의 시작과 더불어 지금까지도 인연을 맺고 있는 울릉도는 숱한 역경을 겪은 만큼 또 많은 보람과 흔적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오늘도 울릉도에서는 화성점퍼를 입은 직원들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화성산업(주)'동아백화점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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