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우 마술사' 동아백화점 정명주 계장

입력 2005-11-14 10:42:36

한마디로 '똑소리' 날 것 같은 사람. 동아백화점 디스플레이 디자이너 정명주(30) 계장을 만난 첫 느낌이다. 몸에 착 붙는 검은색 인조가죽 바지에 얼핏 보면 산발을 한 듯한 긴 퍼머머리. 차림새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분방함이 배어나오는데 거기다 자못 위압감을 주는 검은색 아이라인까지 곁들였다. 아무 말 없어도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 하다.

계명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정 계장은 지난 2000년 9월 입사했다. 당초 그래픽디자인 업무를 맡을 예정이었지만 때마침 백화점 디스플레이 디자이너 자리가 비는 바람에 평소 꿈 꿔오던 일을 맡게 됐다고 했다. '디스플레이 디자이너'(Display Designer)는 일반인들에겐 다소 낯선 직업이지만, 업무는 상당히 친숙하다. 백화점 쇼윈도를 아름답게 꾸며 고객들의 시선을 끌고, 매장내 상품을 체계적으로 진열해 아이쇼핑 나온 고객들의 발길을 붙잡는게 바로 이들의 역할이다. 그만큼 유행에 민감해야 하고, 또 트렌드를 재빨리 읽어내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수시로 서울을 찾는다. 자극도 받고, 때론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얼마 전 동아 수성점에 파격적인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턱시도를 입은 남자 마네킹과 오드리 햅번의 사진으로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자 마네킹을 공중에 매달아 놓은 것. 고객 반응은 극과 극을 치달았다. 한 고객은 "대구에서 이런 전시물을 본다는게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전화를 걸어왔고, 다른 고객은 "혐오스럽다"며 당장 치우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어느 직업을 갖고 있어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는 보람과 좌절을 극심하게 경험합니다. 정성 들인 전시물이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매출에도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을 때는 가슴이 벅차지만 그와 정반대되는 반응이 나올 때는 상당한 좌절감도 맛보게 됩니다."

정 계장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촌스럽다'는 평가. 인력이나 예산 등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지역 백화점들의 디스플레이가 서울이나 외국에 비해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은 그도 인정한다. 하지만 '지방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선입견만은 버려달라고 당부했다. 똑같은 작품도 대구에 내려오면 촌스러워지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

"디스플레이 디자이너가 되려면 우선 패션 감각이나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이 중요하겠죠. 하지만 동시에 폭넓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상식을 확보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안목이 있어도 그걸 표현해 낼 길이 그만큼 좁아집니다." 그는 요즘 각광받는 직업인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그저 겉 멋만 들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동아백화점의 경우 점포수가 많다보니 그만큼 일도 많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을 준비해야 할 11월이면 보름 이상 야근도 해야 한다. 쇼윈도 전시물을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하는 일은 아이디어를 내고 또 디자인을 하는 것. 실제 작업은 외주를 준다. 하지만 디자인대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꼼꼼히 챙기기 위해 거의 함께 작업 과정을 지켜본다. 올해 선보일 크리스마스 디스플레이의 테마는 '매직'이라고 귀띔했다. 어떤 작품이 백화점에 선보일 지 기대해 달라는 말과 함께.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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