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어떤 퇴근길

입력 2005-11-12 09:22:00

오늘도 노인은 양말코너 아줌마에게 손톱을 내맡기고 있는 중이었다. "깎을 때가 되었는지 그냥 물어뜯고 있더라고요".

길고 때 낀 손톱을 가지런히 깎아주는 와중에도 아줌마는 한 켠의 자기 물건들을 지켜보느라 눈길이 사뭇 이리저리 바쁘기만 하다. 마침 한 아가씨가 종종거리며 전철역 계단을 올라오더니 양말코너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양말 사려면 좀만 기다려유. 다 되어가니께". "노인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믿으세요". "물론 안 믿었지유. 계단도 나보다 더 잘 오르내리시거든. 그래서 안 좋은 소리도 많이 했어유. 돈을 주고 가는 사람들도 괜히 한심해 보이고. 그러다 정말 두 눈이 다 상해서 못쓰게 됐다는 걸 우연히 확인하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미안키도 하고.... 그담부터는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있어야지유".

"손님을 놓칠 때도 더러 있었겠네요". "없진 않았시유. 그래도 잠깐이고, 마음이 찜찜한 거 보다야 낫지. 나나 노인네나 처지가 뭐 그리 다르남유.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그래도 난 육신이 멀쩡하니 복이 있는 거라. 안 그래유? 심심할 때 노인네가 노래 들려준 값도 쳐주자면 결국 그게 그거유. 품앗이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가게를 비운 채 시각장애노인의 손톱을 깎아주고 있던 아줌마를 만난 날이. 살아 있는 세상의 소중한 풍경화 한 점이 냉냉한 내 가슴을 헤집고 내걸리기도 한 그날이.

"미안하네유". 손톱 싼 신문지를 뭉쳐들고 아줌마가 가게로 건너온다. 연신 시계를 보면서도, 두 사람의 일이 끝나기를 기꺼이 기다리고 있던 아가씨가 괜찮다는 듯 쌩긋이 웃는다. 그리고 세 켤레에 이천 원 하는 스타킹을 급히 산 뒤 다시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가씨가 잠깐 돌아보며 웃는다. 작은 단풍처럼 잔잔하고 따스한 웃음이다. 아름답다. 기쁨은 나누면 갑절이 되는 게 맞다. 잘나가는 대기업의 임원인 한 친구가 시내 변두리의 쪽방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비참한 밑바닥 인생들의 현존하는 삶을 들여다보면서 끝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노라고 했다.

삶의 불가역성, 모든 하강에는 끝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하강에도 과연 끝이 있어 보였을까. 가장 춥고 외로운 곳에서 오래된 이끼처럼 서식하는 그 군상들은 사람이기보다는 차라리 식물에 더 가까운 모습은 아니었을까.

겨우살이처럼 다른 나뭇가지에 단호하게 뿌리를 내릴 힘도 없으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숨 쉬고 견디고 지탱해나가는 위태로운 생존의 기적을 보여주었을 그들을 향해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될 수 있다'고 어느 시인처럼 말할 수 있을까.

못갖춘마디 앞에 섰을 때 갖춘마디는 자신을 잃는다. 죽음보다 못한 삶의 실존적 한계 앞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는 동안에는 그도 여리디여린 못갖춘마디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일회성의 삶 속에선 그렇게 우리 모두 숙명적인 못갖춘마디들이고, 불완전소절들이 아니겠는가.

갖춘마디란 악보 속에서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정해진 박자를 다 채우지 못한, 못갖춘 우리지만, 그러나 첫박자와 끝박자를 맞추면 언제나 갖춘마디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또한 어딘가. 양지는 음지에 닿고, 음지는 양지에 닿아 있으며 어떤 양지나 음지도 홀로 있지는 못할 터이므로.

지름길을 두고 오늘은 에움길로 귀가한다. 물과 땅이 처음으로 얼고 갈가마귀가 날아든다는 절기. 그래도 환하고 곱게 물든 나뭇잎 같은 사람들 때문에 저무는 가을은 결코 어둡지 않다. 소설, 대설,동지.... 아름답고 평탄한 나날들은 아득할지라도, 차디찬 발목에서 심장부까지 끌어올리는 반전과도 같은, 내공의 힘이 필요한 계절이 오고 있다.

박명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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