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연곡사·피아골

입력 2005-11-09 15:42:08

절집에 물든 단풍, 골짝에 번진 단청

올해 피아골단풍제는 10월 말로 끝났다. 하지만 피아골의 단풍은 늦다. 지난 주말에야 겨우 늑장 도착한 단풍이 골짜기의 연곡사를 물들였다. 이 단풍은 이번 주말까지도 그대로 이어질 듯하다. 단풍은 성미 급하게 이곳을 찾았던 여행객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자연의 잘못이랴. 자연은 있는 그대로다. 늦단풍은 그래서 조급한 사람들에게 마치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가르친다.

강원도 일부에선 영하권에 든 추운 날씨를 보였다. 피아골 연곡사는 아직 빨간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이다. 이곳에서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부도를 보며 눈을 씻고, 화사한 단풍에 휑한 마음까지 씻어보자.

고소성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 쪽으로 향하다 보면 곳곳에서 대봉(떫은감)과 단감을 파는 간이매점을 만난다. 군데군데 산기슭이나 동네 어귀의 감나무엔 어김없이 대봉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최참판댁 입구에서 7.5㎞를 가면 화개장터다. 조영남이 노래한 '화개 장터'에 나오는 그 장터는 화개천이 섬진강에 흘러드는 구례 하동의 경계 지역에 있다. 원래 장터는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섰고 대신 화개천 강가에 현대식 관광지 형태로 장이 들어서 있다.

연곡사는 피아골 초입에 있다. 화개장터에서 다시 2.5㎞를 더가면 외곡검문소가 있는 삼거리다. 우회전해서 약 8.5㎞를 더 들어가야 연곡사에 닿는다. 멀지않은 이 길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길 양편의 가로수가 모두 단풍나무다. 이 단풍나무들은 이제야 제 빛깔을 내기 시작했다. 단풍이라고 해서 모두 다 붉은 것도 아니다. 노란색에서부터 녹색, 역광을 받아 더 은은한 분홍빛 등 색깔 전시장이 따로 없다. 단풍나무 아래로는 하얀 들꽃이 이 색깔을 받쳐준다.

길가에서 콩타작에 여념이 없는 농부를 만나는 것도 이례적이다. 연곡사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고찰. 창건은 화엄사보다 1년 앞섰다. 하지만 피아골에서 빨치산들이 최후의 항쟁을 벌였던 터라 한국전쟁 때 전소된 것을 중창했다. 그래서일까. 여느 이름 있는 절처럼 가람이 화려하지 않다. 지금의 건물들도 대부분 1980년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국보급 부도가 2개나 있는 절 치고는 소박하다. 너른 터에 대적광전 등 덩그러니 건물 두세 채가 서 있을 뿐이다.

오래된 역사의 흔적은 절 곳곳에 남아 있다. 대적광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국보 제53호인 동부도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부도라는데 정교한 장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완벽한 작품이다. 천년의 세월을 견뎌왔는데도 선과 조각이 화려하다. 국보 제54호인 북부도는 이곳에서 약 50m를 더 올라가야 한다. 동부도에 비해서 더 웅장한 편.

피아골은 연곡사를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곳에선 옛날 주민들의 생활상인 계단식 논밭도 볼 수 있다.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쌓아 만든 논두렁의 곡선과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은 가옥들이 색다른 모습이다. 이런 다랑논은 남해 가천마을과 해인사 입구에서도 볼 수 있다. 여행이란 게 꼭 바쁘게 갔다가 바쁘게 보고 바쁘게 돌아오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터. 이곳에서 역사를 생각하고 다랑논을 일구는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여행이다.

글·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찾아가는 길=대구-구마고속도로-칠원분기점-남해고속도로-하동나들목(화원에서 6천600원)-나오자마자 구례방면 우회전-19번국도-25㎞-최참판댁 입구 외둔삼거리-7.5㎞-화개장터-2.5㎞-피아골 입구 외곡검문소-8.5㎞-연곡사

▶먹을거리=하동읍에서부터 도로 양편에 재첩국을 파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재첩은 5월이 제철이지만 요즘도 맛은 변함없다. 재첩국 한 그릇에 7천 원. 식당보다 더 많은 숫자의 과일가판대도 먹음직스런 배와 감 등을 내놓고 있다. 요즘은 이 지역 특산물인 대봉이 대부분의 가판대를 차지한다. 비싸다 싶지만 감홍시 하나면 배가 부를 정도로 크다.

사진: 단풍에 둘러싸인 연곡사. 여행객들이 단풍나무 옆 큰 돌배나무에서 떨어진 돌배를 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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