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밭의 감나무에 감이 많이 달렸다며 따러가자 했다. 재미삼아 놉으로 따라나선 지인이 셋. 팔이 아프도록 많은 감을 가져올 기대를 하며 도착해 보니 웬걸, 나지막한 애기 감나무 한그루만 달랑 서있었다. 오륙십개 달렸을까. 잠자리채 같은 '쪽대' 없이도 손으로 충분히 딸만 했다. 거창하게 여겼던 감따기는 5분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텅 빈 가지에 남은 감 셋. 배 고픈 새들을 위한 까치밥이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추수철에 가난한 사람은 물론 말 못하는 날짐승까지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씨를 지녔다. 그런 나눔의 정신은 성서에도 여럿 곳에서 나온다. "추수때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말고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버려두라."
까치 때문에 과실 농사 망치게 됐다며 눈 흘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까치밥조차 아깝다고 푸념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것을 까치밥으로 남긴다.
얼마전 한 친구가 운전 중 추돌사고를 냈다. 고함부터 지르는 사람들만 봐온 친구는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상대차 운전자인 중년의 신사가 미소 띤 얼굴로 이리 말하더라는 것이다. "저도 똑같은 상황에 처한 적이 있죠. 그때 그 운전자가 말하더군요. 당신에게도 이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 친구에겐 이런 일도 있었다. 십수년 전, 돈 수천만 원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다. 그때 한 사람이 선뜻 빌려주었다. 화가인 친구는 감사의 표시로 작은 그림 한 점을 주었다. 그 후 돈을 얼른 갚지 못해 미안해 하는 친구에게 그 지인이 말했다고 한다. "이미 그림 한 점을 받았으니 그 돈은 안 갚아도 됩니다. 대신 누군가 가난하여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의사인 그 지인은 평소 노랭이로 소문난 사람이다. 하지만 알고보니 남몰래 이웃을 돕는 데는 아까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생각이 멋진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게 문득 즐겁다. 그 약속을 꼭 지키겠노라는 친구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환해보인다. '나눔의 릴레이', 바로 우리 삶 속의 까치밥이 아닐는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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