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꽃' 활활 태우다

입력 2005-11-04 09:24:37

'꺼져가던' 연탄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기름이나 가스난방에 밀려 사라져 가던 연탄이 고유가 시대를 맞아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언제 문을 닫을까 고민하던 연탄공장들은 밀려드는 연탄을 찍어내느라 탄가루를 풀풀 날리기 시작했다. 구경조차 힘들던 연탄보일러는 기름보일러를 밀어내고 있으며 연탄 배달차들은 거리에서 시커먼 자태를 뽐내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 값에 주름진 서민들에게 연탄은 힘이 되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연탄은 겨우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었다. 그 시절 서민들은 연탄을 몇 백 장 사서 집안 한 구석에 쌓아두기만 해도 마음 뿌듯했다. 연탄가게에서 새끼줄에 끼워 파는 낱장을 사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연탄은 난방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연탄불에 밥 짓고 국을 끓였다. 세수할 물을 데우고, 빨래를 삶아내기도 했다. 눈 쌓인 골목에서 미끄러지는 일을 막아주기도 했다.

난방, 조리, 세탁, 방재 기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게임 기능도 했다. 연탄재. 장난감이 귀했던 그 시절 아이들은 연탄재를 부숴서 서로에게 던지며 전쟁놀이를 했다.

연탄은 묵묵하지만 섬세하다. 위, 아래에 있는 연탄의 구멍을 어떻게 맞춰주느냐에 따라 난방효과나 난방시간이 달랐다. 너무 잘 타서 위, 아래 연탄이 딱 달라붙는 바람에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 아니다. 둘 사이를 떼어놓기가 만만치 않은데다 잘 못 하다보면 연탄이 아예 부서진다.

연탄은 때론 무서운 존재로 변했다. 그 시절 연탄가스 한두 번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김칫국물과 식초를 마시며, 물 괸 항아리처럼 '흔들리는 머리'를 진정시켜야 했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아서 겨울이면 신문기사에 '일가족 연탄가스로 중독사'란 제목의 기사를 자주 접해야 했다. 삶을 비관해서 방에 연탄화덕을 갖다놓고 목숨을 끊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연탄은 어려웠던 삶에 사랑으로 보담아 줄 수 있는 매개체였다. 추운 겨울 자식들 방의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새벽잠을 설치며 연탄불을 갈던 어머니의 자식 사랑, 좁은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가는 연탄 리어카를 밀어주는 달동네 인정이 우리를 푸근하게 했다.

시인 안도현은 읊었다. "삶이란/나 아닌 그 누구에게/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연탄 한 장')이라고. (2005년 11월 3일/라이프 매일 www.lifemaeil.com)

글.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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