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건축, 우리의 자화상

입력 2005-10-29 09:42:41

우리가 사는 도시의 얼굴격인 건축물은 어떤 모습일까. 특별한 색깔은 갖고 있을까. 한 시대의 미적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있다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아쉽게도 이 땅의 건축은 더 나은 생활환경을 고려하기보다는 '돈벌이 수단'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그러진 건축관이 수십 년째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부동산은 주식과 함께 가장 손쉽고, 또 한번에 가장 많이 돈 버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우리사회는 누구라도 '부동산이 곧 돈'이라는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블랙홀에 빨려들 듯 너도나도 투기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결국 부동산 투기 대상이 된 건축물은 우리사회의 병폐가 고스란히 녹아들 수밖에 없다. 도시는 점점 더 흉악한 괴물로 변해갈지 모른다.

'건축, 우리의 자화상'을 펴낸 임석재(44·이화여대 건축과) 교수는 이처럼 볼품 없는 도시의 건축물에 대해 20개 분야에 걸쳐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는 집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갖고 싶은 집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집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역사 앞에 일기를 쓰는 심정으로 건축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을 기록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최근 1, 2년 사이 문을 연 고속철 역사가 하나같이 붕어빵을 찍어내듯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다. 간판을 떼고 보면 그 역이 그 역이라는 것. 도시의 중심공간인 기차역을 서구식 하이테크 양식의 대형 공간으로 지어놓고 또 그 속을 다시 상업시설로 가득 채워 놓은 것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있다.

공무원 양식이라고도 불리는 관공서 양식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특히 관공서 건물에 나타나는 권위주의적 건축양식을 구태가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창작의 무덤이자 시간의 사각지대라고 보고 있다.

능선을 짓밟고 들어찬 흉물스런 아파트, 할리우드 키즈 양식의 영화관, 그리스 신전 또는 디즈니랜드를 모방한 모텔의 아이러니에도 쓴소리를 뱉는다. 첨단 양식의 빌딩이 들어찬 테헤란로. 한국의 맨해튼이라 불리는 곳이지만 정작 그 주인은 외국의 투기자본이라는 사실에 대해 수치스러워 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또 입시학원으로 유명해진 서울 대치동에 대해서는 경제권력으로 교육권력을 사고 다시 그것으로 대를 이어 특권을 누리려는 가족이기주의의 총 본산이라며 대치동의 이런 모습이 신림동 고시촌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대부분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처럼 기형적이고 볼품없는 모습이 가득한 도시, 서울이지만 서울 이외 지역은 어떨까. 혹시 따라가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은 아닐까. 건축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풍토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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