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지하철" 가까워진 무료 급식소

입력 2005-10-28 16:10:14

2호선 개통 이후 노인들 발길 늘어

지난 25일 대구시 서구 내당동 달성고등학교 옆 소방도로. 이른 아침부터 수십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스팔트 위에 신문지를 깔고 줄지어 앉아 있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라도 오는 것일까.

오전 11시가 가까워져 오면서 비로소 긴 행렬의 정체가 드러났다. 인근 무료급식소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어르신들은 약속이나 한 듯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아침 일찍 달서구의 성서 집을 나섰다는 이팔봉(81) 할아버지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은 항상 이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해결한다"며 "요즘은 지하철이 생겨 더 편리해졌다"고 좋아했다.

◇밥 굶는 어르신들

대구시 북구 칠성동에 사는 조월자(74) 할머니. 5년 전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는 10평 남짓한 판잣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다른 지방에 살고 있는 아들이 있어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할머니는 종이를 주워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한단다. 하지만 종이를 팔아 얻은 하루 수천 원의 벌이로는 세 끼 식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힘들어했다.

같은 날 대구 중구 교동에 위치한 무료급식소인 요셉의 집에서 만난 이기철(68) 할아버지는 점심만 벌써 두 번째 식사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 잘 못 먹으니까 이럴 때 많이 먹어야지. 두 번씩 먹는 게 사실 부끄럽긴 하지. 허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으로 인해 받는 한 달 정부 보조금 30여만 원으로는 방세와 각종 공과금을 제외하고 나면 제대로 식사를 챙겨 먹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굶는 게 생활이 된 할아버지에게 매주 며칠씩 문을 여는 무료 급식소가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른다.

대구 시내에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 65세 이상 어르신은 1만2천713명에 이른다. 여기에 부양가족이 있어 수급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뚜렷한 벌이가 없이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합하면 끼니를 거르는 어르신의 수는 부쩍 는다. 하지만 대구시내 30곳의 무료 급식소가 한 번에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양은 8천여 명 분에 불과한 실정.

나누우리 노인무료급식소 조현자 이사장은 "매년 치솟는 물가도 그렇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무료급식소 하나 만드는 것도 어려운 형편"이라며, "앞으로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하면서 노인무료급식소의 수요가 급증할 텐데 걱정"이라고 했다.

◇사랑을 실은 지하철

지난 18일 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면서 어르신들의 무료급식소 방문이 더욱 편해졌다. 게다가 어르신들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쁨이 두 배'인 셈이다.

대구시내 30곳의 노인 무료급식소 중 지하철 역 인근에 위치한 급식소는 모두 14곳. 그 중 5곳은 역에서 걸어서 5분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철이 사랑을 가득 싣고 달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영남불교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노인무료급식소의 장성태 사무국장은 "이곳을 방문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지하철 영대병원역에서 내려 걸어오시는 분들"이라고 전했다. "지금은 2호선이 개통돼 앞으로 더 많은 어르신들이 찾을 것 같아요. 현재는 100명 정도 모실 수 있는데, 시설 확장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누우리 조현자 이사장은 "아예 밥통을 들고 오셔서 밥과 반찬을 싸서 가시는 어르신도 계시지만, 이분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마음이 즐거워진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먼 지역에서 급식소를 방문하는 어르신들이 부쩍 늘었다"며 "앞으로는 음식을 더 많이 준비해야 할 것 같아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고 웃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5분 정도 소요 지하철 부근 무료급식소 현황(대구시)

노인무료급식소 지하철역 급식일 연락처

요셉의 집 대구역(1호선) 주5회(수·일 휴무) 426-8737

나누우리 급식소 두류역(2호선) 주2회(화·목) 556-1004

영남불교대학 영대병원역(1호선) 주1회(토) 474-8228

사랑나눔터 송현역(1호선) 주1회(금) 655-0108

자비의 집 반월당역(1·2호선) 주5회(토·일 휴무) 253-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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