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청량산에는 지금 가을이 한창이다. 기암과 층층의 절벽마다 가을이 또아리를 틀었다. 노랗고 붉은 색을 띤 잎사귀마다 가을햇살이 영롱하다. 청량한 기운이 가득한 숲속에서는 나무를 옮겨 다니며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와 청설모를 만날 수 있다. 고즈넉한 산사 청량사과 응진전에도 여린 가을이 살며시 스며들었다. 풍경소리를 들으며 귀 씻고, 화사한 단풍으로 마음을 물들이고 싶어 청량산을 찾았다.
# 응진전 가는 길
입석에서 오른다. 울퉁불퉁한 돌길이다. 숲이 우거진 오솔길엔 새소리가 요란하다. 이따금 뺨을 스치는 바람도 함께 한다.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와 참나무, 생강나무가 반긴다. 오른쪽에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300m쯤 가면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청량사, 오른쪽으로 가면 응진전이다. 응진전으로 향한다. 응진전을 보고 청량사로 내려가면 되기 때문이다. 응진전까지는 20여분. 몸에서 땀이 배어나올 쯤이면 도착한다.
외청량사로 불리는 응진전. 공민왕을 따라 피난 온 노국공주가 기도했던 곳이다. 자그맣고 소박한 암자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다. 응진전 옆에는 노국공주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가지가 잘려나간 앙상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응진전 주변 경관은 뛰어나다. 뒤로는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까마득한 절벽이다. 암벽에는 노란 단풍이 장관이다. 절정을 아니지만 금방이라도 색색의 물결을 이룰 듯 가을햇살에 반짝거린다. 푸른 산의 기운을 받아 하나같이 촉촉하다. 황단풍이다. 아무리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눈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 응진전을 등지고 서 있으면 맞은편 축융봉(845m)이 손짓한다. 단풍이 장관이다. 청량산에서 단풍이 가장 많이 들었다.
# 총명수와 어풍대, 김생굴
응진전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 나오면 최치원 선생이 물을 마시고 정신이 맑아졌다는 총명수 샘터가 나온다. 바가지는 놓여있으나 그다지 깨끗해 보이진 않는다.
바로 옆에 어풍대가 있다. 청량사와 주변 암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어풍대에서 바라보는 청량사는 한 폭의 수묵화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만큼 아름답다.
'구름으로 지은 청정도량'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청량사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서부터 연화봉, 문수봉, 반야봉, 자란봉, 뒤실고개, 탁필봉이 휘둘러 보이다. 오른쪽 낭떠러지에는 노란 단풍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위 아래로 각각 걸려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곳에서 단풍을 보는 것이 좋다. 청량사에서 연화봉이나 문수봉, 반야봉을 오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풍대에서 5분 정도 더 올라가면 신라의 명필 김생이 10년을 묵으며 글씨공부를 했다는 김생굴이 나온다.
# 청량사에도 단풍이
응진전 못지 않게 청량사의 가을 풍광도 수려하다. 대표적인 가을색은 불쑥불쑥 솟은 회색빛의 기암절벽과 그 사이사이에 꽃처럼 붉게 박힌 돌단풍에서 나온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시루떡처럼 단풍이 켜켜이 쌓여 한입 깨물고 싶어진다.
청량산엔 크고 작은 36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 중 큰 것만 12봉우리다. 이른바 육육봉이 바로 그것이다. 봉우리들이 연꽃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꽃술의 자리에 유리보전이 놓여 있다.
유리보전 앞에 서면 문득 산봉우리들 숲에 갇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금탑봉, 축융봉, 연화봉, 반야봉 등이 멀리 또는 가까이 도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왼쪽 3층의 탑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금탑봉이다. 단풍이 든 가을 해질녘이면 봉우리가 노을에 황금빛으로 물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달리 노란 단풍이 많다. 황단풍이다. 처음 접하면 화려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단풍을 오래 바라보면 점점 그 속으로 동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청량사 진여화 사무장은 "올해는 단풍이 예전에 비해 조금 늦은 것 같다"며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단풍색깔이 바뀌기 때문에 이번 주말이면 절정에 이를 것 같다"고 말했다. 청량사 범종각 주위에는 현재 11월 말까지 월주 큰스님의 '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안심당=범종각 아래 있는 찻집이다. 너와 지붕과 황토 흙벽의 예스러운 굴뚝이 인상적이다. 안심당(安心堂)이란 이름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는 찻집이다. 한지로 만든 학과 거북, 원앙 등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출입구에는 바람개비에 의해 돌아가는 말인형의 그림자가 한지를 댄 전등갓에 비치도록 한 주마등도 있다. 솔잎을 발효시킨 솔바람차를 비롯해 바람소리차, 갈바람차 등 전통차가 준비돼 있다. 큼직한 통유리 밖으로 축융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단풍이 예쁘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 행복할 것 같다. 찻집에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화두가 나무에 새겨져 있다.
◇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를 이용, 안동 남안동IC에서 빠져나와 안동시내를 거쳐 안동댐과 도산서원을 지나 봉화 청량산으로 가는 길이 지름길이다. 대구에서 약 2시간 소요.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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