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삶에서 부여잡은 '희망의 끈'

입력 2005-10-25 10:53:07

고령군 개진면 우곡리 낙동강변 외진 곳에 위치한 장애인 집단시설인 '들꽃마을'에는 작은 기적(?)이 피어나고 있다.

사회와 가족들로부터 버림받고 생을 포기하려 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부여잡고 서로 기대며 따뜻하게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22일 오후 활짝 웃고 있는 세 사람을 만났다. 10년 전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뇌병변 장애 및 하반신 마비로 누워만 있었던 서상순(57·장애 1급)씨는 대소변조차 누워서 볼 정도였지만 올 초부터 서서히 회복, 10년만에 앉을 수 있게 됐다. 서씨는 창문을 통해 낙동강을 따라 흐르는 물길을 보며 '바깥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구나!'라고 되뇌며 감탄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 4월 물리치료실이 건물안에 설치되면서 서씨는 갈수록 팔힘이 세져 이제는 휠체어 팔걸이를 붙잡고 체조선수처럼 공중에 떠있기도 한다. 그는 "10년 전 중구 북성로에서 유명한 전기용접공이었다"며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으로 용접봉을 잡고 싶다"고 기뻐했다.

김모(72) 할머니는 1남7녀가 있었지만 대구시 남구 봉덕동에서 혼자 살다 우울증, 불면증, 심장병 등으로 고통바다 이달 초 이곳으로 왔다.김 할머니는 이제 사람을 알아보거나 식사도 잘 하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여성들만 있는 병동에서 오손도손 삶의 온기를 느끼면서 삶의 의지를 다지고 있는 할머니는 가요 '섬마을 사람'을 흥얼거리기도 했다.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신체가 마비됐던 김희준(53·장애 1급)씨도 이제는 제법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일어나야겠다는 본인의 의지와 시설측의 지속적인 물리치료를 통해 1층에서 2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2시간이상 걸렸던 것이 이제는 10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회복이 빠르다.

지난달에는 보행지팡이도 버렸다. 김씨는 매주 1회씩 외부에서 오는 물리치료사의 도움으로 재활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는 "들꽃마을이 나를 다시 살게 한 천국"이라며 "아무도 모르지만 이곳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웃었다.

'들꽃마을' 김귀숙 사무국장은 "85명의 장애인들이 살고 있는 이곳 낙동강변 작은 마을에 좋을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며 "세상은 각박하고 살기 힘들지만 이곳에는 희망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들꽃마을'은 15년 전 최영배 신부가 부랑인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회복지복인 장애인 수용시설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여 새로운 삶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들꽃마을'에서 삶의 의지를 다지며 밝게 살고 있는 서상순, 김희준, 김모 할머니(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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