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의 대사건들/우르술라 무쉘러 지음/김수은 옮김/열대림 펴냄
로마황제 네로가 자신을 위해 짓도록 한 '도무스 아우레아' 왕궁은 엄청난 크기의 건축물이었다. 50㏊의 땅 위에 건물, 정원, 공원, 온천이 펼쳐지고, 왕궁 내부는 방이 150개였다. 이렇게 호화로운 건물이 완성된 뒤 네로 황제는 자신의 만족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야 마침내 인간답게 살게 되었구나."
베르사유 궁전을 건립한 태양왕 루이 14세는 명예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군주였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영원히 남기기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건축물을 선택했다. 베르사이유 궁전도 이런 그의 명예욕을 고스란히 드러낸 건축물이다. 건축가를 끝까지 신임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덕을 부린 루이 14세는 포셀렌의 트리아농, 샤토 드 클라니, 샤토 드 말리 등 왕가의 성들을 잇따라 건축하는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건축가 입장에서는 주문 받은 건축물이야말로 자신의 예술혼을 불사를 수 있는 일생일대의 승부였다. 미켈란젤로는 건축가로서 성베드로 성당 공사를 맡아 건축주인 교황 바오로3세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
그는 자신의 설계를 죽은 후에도 보장받기 위해 후계자가 미켈란젤로의 뜻대로 건축하든지, 아니면 광범위한 부분을 철거하든지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전략을 짠다. 결국 성 베드로 성당의 최종형태는 거장의 의도와 방침에 따라 완성됐다.
파리 시가지는 조르주 외젠 오스망 남작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새로 탄생한다. 오스망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라는 기치 아래 인간과 기념물을 안중에 두지 않고 콤파스와 펜을 잡고 파리 거리를 장악했다. 그는 17년간이나 끔찍한 기념물 파괴라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야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파리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냈다.
독일의 현직 건축학자 겸 건축가인 우르술라 무쉘러가 펴낸 '건축사의 대사건들'은 이처럼 권력의 상징이자 예술적 능력을 표현하고자한 위대한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건축현장의 무대 뒤편으로 시선을 돌려 이야기한다.
저자는 가장 높은 탑, 가장 화려한 황궁, 가장 막강한 기념물을 만들겠다는 건축주와 건축가들의 과대망상증적 노력을 수많은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
책은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피라미드, 인간의 오만과 탐욕의 상징인 바벨탑, 투기와 부실공사가 극성을 부린 로마시대의 주택, 아테네 일자리 창출이라는 논리로 강행된 파르테논 신전, 동화 속의 궁전 같은 독일의 바이에른 성, 파리 하늘에 우뚝한 에펠탑, 1956년 쿠비체크 대통령이 덤불 속에서 착공한 브라질의 새 수도 건설에 이르는 31편의 흥미진진한 건축 드라마를 펼쳐놓는다.
권력자들은 이런 건축물에서 비할 바 없는 위안을 얻었으리라.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벽돌로 만든 도시를 물려받았으나, 대리석으로 만든 도시를 물려주노라."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