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국체전과 체육 정신

입력 2005-10-13 11:28:55

여든여섯 번째 전국체전의 거룩한 횃불이 밝고 힘차게 타오르는 날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선수들은 고향 시'도의 명예를 걸고 메달경쟁을 하게 됩니다. 개인선수들의 메달쟁취도 필사적이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의 순위 올리기 기싸움도 점입가경입니다. 거룩한 횃불에는 걸맞지 않은 열전(熱戰)의 뜨거운 바람이 울산시를 용광로처럼 달구게 될 듯합니다.

올림픽을 포함한 체전(體典)의 기본 정신은 젊은이들의 아름답고 활기찬 잔치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기량과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귀중합니다. 고대 희랍 올림피아의 첩첩산중 험준한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혼자서 장거리를 달리던 청년이 체육영웅이고 금메달의 주인입니다. 이 정신이 전국체전의 하늘과 땅을 뒤덮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체육의 거룩한 체전이 타락하고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체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상대편을 누르고 올라서는 경쟁이 하나의 원인을 제공한 듯합니다. 이기든지 지든지 최선을 다하고 승자와 패자가 함께 기뻐하고 관중의 박수를 함께 받아야 잔치와 축제의 참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처럼 아주 작은 나라의 한 체육 거성(巨星)이 문득 머리에 떠오릅니다. 1924년 올림픽에서 100미터 육상 동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던 청년입니다. 포리트 경(卿)은 그 후 올림픽 운동의 큰 지도자로 일평생 헌신했습니다. 그는 현대 올림픽의 문제를 엄중히 경고하는 말을 남겼습니다. 거대주의(gigantism), 상업주의(commercialism), 국가주의(nationalism), 인종주의(racism)가 숭고한 체육정신을 썩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체전은 지나친 거대주의로 인하여 아름답고 순수함을 잃기 쉽습니다. 승리하는 제일 큰 이유를 돈에만 치중하여 올림픽이 저질의 시장(市場)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국가주의의 깃발 아래 한 개인의 인격이나 재능은 유린당하게 됩니다. 피부 빛깔이 선호와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국체전의 가을이 오면 저는 이 한반도 금수강산의 한겨레를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을 억제키 힘듭니다. 60년 동안 우리는 절름발이 전국체전을 지켜보았습니다. 휴전선 북녘 땅의 젊은이들이 함께 뛰지 못하는 체전이 왠지 가슴을 짓누릅니다. 민족체전이 다시 열리는 날이 속히 와야 합니다. 그날을 감상하며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 체전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쁜 체전의 하늘 아래 저는 너무도 귀엽고 자랑스런 한겨레의 딸, 어린 소녀를 생각하며 감격의 눈물을 주체하기 힘듭니다. 이 주간에 16세 생일을 맞고 삼성 월드챔피언십 대회에 프로선수로 데뷔하는 위 성미(聖美)님입니다. 미셸 위(Miehelle Wie)는 벽안의 백인이 아닙니다. 한국계 이민 2세의 미모와 충천하는 체력의 소녀입니다. 김치찌개, 홍어찜, 생선회를 좋아하는 전형적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위 성미 양은 벌써 너무 상업세계에 노출이 되었습니다. 나이키와 소니 회사로부터 1천만 달러의 후원을 받고 그 회사제품을 쓰기로 했다는 보도가 제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돈과 명예와 성취욕이 아리따운 성미 양의 정신을 부패하게 하지않기를 간절히 빕니다.

전국체전이나 골프선수권대회나 모든 체육의 참된 정신은 몸을 기르고 닦는 데 있습니다. 경기는 잔치를 좀 더 흥겹게 하고 더 새로운 기록을 성취해 보려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합니다. 지는 편이 없이 승자는 없습니다. 승리의 기쁨은 패자와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선수들만의 잔치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온 국민이 모두 예외 없이 선수가 되어 체전이 전 국민의 축제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체육은 정신교육의 한 부분입니다. 체지덕(體知德)은 하나입니다. 삼위일체입니다.

이윤구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이사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