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관객은 사랑하는 나의 아내다.

입력 2005-10-11 08:42:54

어느 날인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아버지인 난 제쳐 두고 후배 배우인 한기웅에게 달려가서 악수를 청하고선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더욱이 귓속말로 "아빠, 저 아저씨 TV에 나오시는 분 맞지? 나, 이 손 안 씻을 거야. 내일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다." 한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20년 전 대학연극반 시절 이야기다.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송승환 씨를 초청해서 '일어나라 알버트'라는 작품을 공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를 직접 본다는 생각에 나를 비롯한 연극반 전원은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였다.

참 신기한 일이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특정 배우를 사랑하고 그와의 추억 만들기를 갈망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꿈을 대신해서 실현해 주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자 원하지만 현실은 시집 한 권을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고, 공연을 보고 난 후 관객들은 스스로 햄릿이나 로미오, 줄리엣이 되기를 원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여겨지기에 배우와 손 한 번, 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서 가슴 저 편에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최근 들어 대구 연극도 양적, 질적으로 많이 팽창되었고, 관객이 사랑할 만한 좋은 배우들도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대구의 배우들은 그들을 동경하며 사랑하고 열광하는 관객들을 대하는 방법이 아직은 서툴기만 하다.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먼저 나서는 것이 건방져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심한 행동이 한 사람의 소중한 연극 마니아를 잃게 만들고, 초등학생처럼 부풀어 있는 관객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쉽게 생각하자. 배우는 관객의 사랑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하지만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동안 넘치게 받은 사랑을 이젠 되돌려 주자. 단언하건대 우리 아들 녀석은 한기웅이라는 이름 석 자를 평생 동안 잊지 않고 살아 갈 것이다. 대구의 배우들이여 아내처럼 묵묵히 우리를 쳐다봐 주는 관객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을 건네자. 그리고 예쁜 결혼사진을 찍어서 앨범에 소중히 간직하자.

김재만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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