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대표적 인터넷 기업 중 하나가 본사 제주 이전을 선언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이들이 결정을 선뜻 납득하지 못한 채 의아히 여겼다. 왜 전도유망한 기업이 서울을 떠나 먼 곳 제주로 갈까? 경영진이 자칫 심각한 판단착오를 일으킨 것은 아닐까?
하지만 회사 측이 던진 대답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신에 가득 차서 이러한 우려를 무색게 했다. "공간적 제약이 거추장스럽지 않은 접속의 시대인 만큼 틀에 박힌 서울 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창의력과 미래 가치를 창조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국제자유도시이자 평화의 섬인 제주가 가진 열린 문화와 지방화라는 시대 흐름을 좇아 즐거운 실험에 나선다"고도 했다. 이는 대구경북을 비롯한 지방의 입장에서 보자면, 뜻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실 오늘날 미래형 기업들은 대부분 창의적인 지역을 찾아 움직인다고 한다. 이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차이를 들춰내기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관용성이다. 서로 다른 생각, 아이디어, 주장이 자연스럽게 뒤섞일 수 있는 분위기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누구나 낯선 지역에 들어와 편안함을 느끼며 적응하기 수월해야 놀라운 활력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혁신적 기업가와 노동인력이 길러진다. 사정이 이러한데 대구경북은 얼마나 적절한 문화 여건을 갖추었는지! 숱하게 묻고 되물었음에도 또다시 되짚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세계적 수준의 창의성을 가진 도시라 일컬어지는 런던, 파리,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은 기술력, 우수한 인적자원 동원력과 더불어 뛰어난 관용성이 돋보인다. 무엇이든 내치기에 앞서 반겨 맞고 넉넉히 감싸 안으므로 늘 도시의 생동감이 살아 숨쉰다. 오랜 역사를 거듭해도 신화만 쌓여갈 뿐 경쟁력은 여전하다.
이에 비해 갖가지 호조건을 지녔으되 커다란 발전 가능성은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 있다. 중국 사천성의 성도(成都)가 그 예이다. 중국인들의 평가에 따르자면, 성도는 비록 유서 깊은 대도시이지만, 짧은 기간 내 세계도시로 부상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한다. 지역적 폐쇄성이 너무 강해 바깥 문화를 배척하다 보니 여러 도시들과 제대로 다투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다른 치명적인 약점은 성도 사람들의 뒤처진 의식이다. 요즘 세계는 정보화, 글로벌화를 맞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으나, 성도 사람들은 타성과 자만에 빠져 새로운 경향을 애써 무시해 버린다고 한다. 치열한 도시 경쟁, 지역 경쟁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려면 반드시 너른 안목과 속도감이 필요한데, 성도 사람들은 중국 서남부의 중심지라는 위치에 만족해서인지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중국 도시들 가운데 토박이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성도라는 조사결과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저 익숙한 것, 낯익은 것을 선호하며, 빠른 생활리듬을 싫어하는 탓이다.
대구의 현실이 이와 같다. 대구는 창의적인 지역과 거리 먼 성도의 처지를 몹시 닮았다. 태산교악의 품성을 가졌다는 자부심, 인재의 고장이라는 명성이 여전하나 솔직히 문전은 예전처럼 붐비지 않는다. 심지어 지방이전을 앞둔 공공기관 종사자들조차 대구에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고개를 돌렸다하니 스스로의 무감각과 문화 빗장을 나무랄 일이다.
마침 지역혁신 박람회가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지역은 관용성이 부족할 경우 창의성이나 혁신 역량 축적마저 곤란하다는 인식을 널리 공유하게 되기를 바란다. 유연한 문화가 도약기의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리라는 사실도 굳게 믿으면 좋겠다. 오로지 다양성을 허용하는 공간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간이 나타나며, 기업 역시 그런 도시로 모여든다는 주장이 어찌 허튼 억지이겠는가.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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