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정보' DJ 정말 몰랐나

입력 2005-10-10 09:16:21

검찰 수사확대

김대중(DJ) 정부시절 국정원의 도청행위는 당초 예상됐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광범위하고도 조직적으로 자행됐던 것으로 드러나 검찰의 수사 범위가 확대되는 형국이다.

특히 국정원은 정치인 등의 휴대전화 도청을 통해 정치사찰을 벌여왔던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런 사찰의 수혜자가 당시 권력의 핵심부였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향후 검찰 수사가 DJ정부의 정점까지 겨냥할지 주목된다.

◇ 광범위한 도청 실태 = DJ정부 중반기에 국정원의 국내 담당 차장을 지낸 김은성 씨의 구속영장에는 국정원의 도청 실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이 적시돼 있다.

우선 DJ정부 출범 직후인 1998∼1999년에 개발된 'R-2'와 '카스' 등 휴대전화 감청장비에 대해 국정원 고위 간부라면 그 운영상황을 알 수 있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김은성 씨는 차장 부임 후 매일 아침 불법 감청정보 내용을 보고받았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이는 불법 감청으로 얻은 정보가 매일 요약·정리돼 관련 부서장급 이상 수뇌부에 일상적으로 보고되는 등 국정원 내에서 조직적으로 활용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임동원·신건 씨 등 당시 국정원장들도 불법 감청정보를 매일 보고받는 등 도청에 직접 연루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의 도청 대상이 정치·경제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에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일상적인 휴대전화 감청활동을 해오다 주요 현안이 발생하면 관련자들을 상대로 집중적으로 불법 감청을 했던 것이다. 2000년 12월 여권 내에서 권노갑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의 퇴진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자 민주당 소장파 정치인들의 통화를 도청했고, 같은 해 11∼12월 진승현 씨의 금융비리 사건이 불거지자 관련자들의 휴대전화를 엿들었다. 검찰은 김은성 씨 등을 대상으로 한 수사가 진전되면 더 많은 정치·경제 분야 도청실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DJ, 도청정보인지 알았나 몰랐나 = 김은성 씨는 자신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국정원이 휴대전화 불법 감청을 한 이유에 대해 "국가이익을 위해서"라고 답변한 점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국정원은 당시 주요 현안이 발생하면 '기획보고' 형식으로 청와대에 관련 내용을 보고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정황에 비춰보면 국정원은 당시에 휴대전화 도청정보를 가공해 청와대에 보고해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문제는 재야시절 도청의 최대 피해자라고 자임해왔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자신에게 전달된 국정원의 보고가 도청에 근거해 작성된 것임을 알았느냐 하는 부분에 모아진다.

국정원의 보고에 전화도청을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포함돼 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도 도청 실상을 어느 정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추측이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이 불법 감청의 흔적을 철저히 감추고 관련 정보를 간단한 문장으로 보고했다면 김 전 대통령은 도청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감쪽같이 속았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 '진승현게이트'에 연루됐던 권노갑 씨가 2003년 3월 한 월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권씨는 2000년 7월 김은성 씨의 자신의 집 방문은 진승현 씨의 돈 전달 목적이 아니라 당시 문제가 됐던 최규선 씨와 김홍걸 씨 관계에 대해 청와대에 올린 보고 내용이 자신의 분노를 사자 이를 해명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에 따르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권씨를 불러서 청와대에 갔더니 '국정원에서 보고서가 올라왔는데, 홍걸이와 최규선 문제가 상당히 걱정스럽다고 한다' 고 해 내용을 물어보니 '최규선이 홍걸이를 이용하고 자네(권노갑)를 팔고 다니면서 비리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권씨에게 보고서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해보라고 시켰고 권씨는 청와대에 다녀온 뒤 김홍걸 씨와 최규선 씨를 집으로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등 문제가 커지자 김은성 씨가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를 받고 '청와대 보고서'를 들고 자신을 찾아오게 됐다는 게 권씨의 주장이다.

검찰은 권씨의 이런 진술과 최근 수사 성과 등을 토대로 국정원이 '도청정보'를 청와대에 보고했는지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를 인지했는지 등을 규명하고 김은성 씨가 권노갑 씨에게 정보보고를 한 경위 등도 밝혀낼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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