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근이양증 高2 고강민군

입력 2005-10-05 09:35:41

"너의 해맑은 웃음을 볼 수 없다면…"

어릴 때는 무엇이든 신기한 것을 보면 뭐냐고 묻고, 한 번 질문을 하면 언제 끝날지 몰라 대답하는 사람을 진땀나게 하는 아이였다. 4살 때부터 동화책을 읽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초등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끝까지 달려 꼴지를 하더라도 박수를 받는 아이였다.

강민이가 지금처럼 휠체어를 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4학년 때부터 걷는 것을 힘들어하고 자주 넘어지더니 급기야 1년 뒤엔 병원으로부터 근이양증 판정을 받았다. 근육세포가 점차 퇴화돼 몸에 힘이 빠지면서 팔, 다리를 쓰기 어렵게 되고 결국 심장까지 멈추게 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설명도 들었다. 그날 집에 오면서 강민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말이 없었다. 이후 전국을 수소문해 좋다는 약을 찾았고, 강민이를 들쳐업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다.

몸이 아픈 것을 빼면 강민이는 지금까지 우리 부부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은 아이다. 한번도 공부하라고 잔소리 한 적도 없지만 강민이는 늘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을 유지해왔다. 또, 우리가 신경쓰지 않게 하려는지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착한 아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강민이 여동생 지혜(초교 5년)다. 어려운 형편에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하느라 정신이 없고, 행여 시간이 생기더라도 강민이를 챙기느라 지혜는 뒷전이기 때문. 하지만 우리가 바쁘면 제 오빠를 위해 이것, 저것 챙겨주는 속깊은 아이다.

가끔 집에 들르는 강민이 친구들도 고마운 존재다. 준교, 기봉이, 재철이, 기현이. 1학년 때부터 강민이와 한 반인 아이들. 남편과 함께 강민이의 등·하교길을 도와줄 뿐 아니라 옆에서 강민이를 챙겨줘 항상 우리 부부를 미안하게 만드는 아이들이기도 하다. 귀찮을 법도 하건만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기울여주는 관심도 고맙다.

이 병을 앓는 사람은 2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하지만 40대까지 산 사람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강민이는 병을 꿋꿋이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예전에 강민이가 '아빠, 엄마의 희망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우리 부부는 가슴이 메어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이미 강민이, 너는 우리 부부의 희망이야'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취재진이 고강민(17.화원고 2년)군을 만나러 화원고교를 찾은 4일은 마침 중간고사 첫날이었다.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강민이는 든든한 4명의 친구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었다. 맑은 눈망울에 해맑은 미소를 보노라면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다만, 타고 있는 휠체어와 또래들 보다 작은 체구가 몸이 아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

강민이의 장래 희망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이미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은 중학교 때 딴 상태. 부끄럼을 타는지 취재진의 물음에 단답형으로 대답하던 강민이는 시험에 대해 묻자 대뜸 '생각보다 못 봤다'며 불만스러워했다. 하지만 주위 친구들은 공부 욕심이 많아서 그렇게 말하지, 실제는 잘 쳤을 거란다.

학교에서 강민이의 손발이 되어주는 4인방 중 강민이의 단짝인 준교는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원이 되는게 꿈이다. 강민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치료약을 만들기 위해서란다. "힘겨운 상황인데도 밝게 지내는 강민이를 보면 오히려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수업시간에 피곤해 졸고 있으면 옆에서 깨워주고 공부하다 모르는 것을 물으면 자세히 가르쳐 주죠. 제가 강민이를 돕는다지만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을 때가 더 많습니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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