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부터 드나들던 노작가의 작업실을 찾으면 으레 술자리로 이어지고 오가는 술잔이 바빠질 무렵이면 홍조 띤 소년의 얼굴로 돌아간 작가를 만난다. 서울근교 작업실이 개발의 바람을 타고 너무나도 부산해져 버린 탓에 아예 연고도 없는 경주 외곽의 벽촌으로 터전을 옮기셨기에 종종 뵐 수 있었다. 그날의 방문에서는 수십 년을 한결같이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를 들려주셨는데, 적당히 모자라게 살아온 것이 비결이라 하셨다. 심지어 당장 쌀 걱정을 해야 할 상황에도 생활비를 모두 털어 외국여행을 다녀오니 오히려 새로운 활기가 솟더라는 얘기엔 포복절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이 언제나 자신을 비장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도록 이끌었다는 뒷말을 듣곤, 큰 명성을 얻은 지 십여 년이 지났건만 세간은 여전히 초라하고 집 주위엔 뭐 하나 꾸민 흔적조차 찾기 힘든 연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부족함에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었던 간결한 생활이 깊이 있는 예술적 완성을 이루게 한 것이다.
경주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처음에는 대도시에서 살던 속도감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토록 분주했던 생활의 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니 너무나도 산만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차츰 생활에서 불필요하고 번잡한 것들을 거둬내니 평범하게 지나치던 것들조차 새롭게 다가왔다. 부끄럽지만 일로써 대하던 미술이 진정 가슴으로 와 닿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내 삶의 속도에 기준을 두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사물의 속도에 맞추어 감속할 수 있는 것이 미술을 넘어 우리 삶을 둘러싼 것들과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을 경주는 내게 가르쳐 주었다.
도시적인 속도로 지나치는 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꽃의 속도에 마음을 맞추면 어느새 내년이 기다려진다. 간결한 삶의 미학을 예찬하면서도 이미 기성복 최후의 치수에 육박해 버린 허리를 보니 아직 내겐 버릴 것이 너무나 많이 남았나 보다.
이두희 경주아트선재미술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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