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있다 보면 관람객들 때문에 종종 웃을 일이 생긴다. 얼마 전 외출을 다녀오니 단체관람 온 공대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현대미술이란 걸 봐야 하는 이유를 누군가 와서 해명하라며 로비에서 장난기 어린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아주 당돌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바쁜 일정 중에도 이곳을 찾아 왔다는 게 기특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 급기야 세미나실로 자리를 옮겨가며 두 시간이 넘는 토론으로 이어졌다. 오고 간 이야기의 쟁점은 미술이 우리 생활에 왜 필요한가였지만 긴 설전(舌戰)으로 이어진 이유는 작품 속에서 명확한 의미만을 찾으려고 하는 학생들의 논리적인 접근 태도를 바꾸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일본에 분 욘사마 열풍으로 세간의 화젯거리로 다시 주목받던 드라마 '겨울 연가'의 인상적인 대사가 마침 떠올라 이를 인용하면서 자연스러운 공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극중의 준상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 오랜 친구인 상혁과의 결혼을 앞둔 유진 앞에 민형(알고 보니 죽은 줄 알았던 준상)이 운명처럼 나타난다. 민형과 상혁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에게 민형은 어느 날 퉁명스레 질문을 하나 던진다. "상혁씨가 왜 좋아요?" 머뭇거리던 유진은 당황하며 이유를 댄다. "상혁씨는 친절하고…착하고…잘해주고…." 민형은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다시 묻기를 "그럼 나는 어디가 좋아요?" 아무 말도 못하는 유진,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민형이 웃으며 던지는 한마디는 그녀의 정곡을 찌른다.
"거봐요! 진짜 좋은 것은 이유를 댈 수 없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꼼꼼히 따져서 생기는 것이 아니듯 미술 또한 해석하는 자세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천천히 다가갈 때 비로소 곁에 오는 것이다. 잿빛 도시를 떠돌며 차츰 시들어만 가는 우리의 감성에 따사로운 햇살을 비춰 줄 수 있는, 이제는 정말 몇 남지 않은 창(窓) 중에 하나가 미술이 아닐까?
이두희 경주아트선재미술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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