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내 시·군 공기관 유치에 사활

입력 2005-09-22 11:06:16

경북도내 각 시군들이 공공기관 유치에 지자체의 사활을 걸고 있다. 공공기관 유치가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서다.

일부 지역에서는 플래카드가 10m간격으로 나붙어 도시를 온통 뒤덮고 있고 대형 애드벌룬, 팸플릿, 전단도 난무하고 있다. 유치 대상기관에 자신들의 지역을 알리려는 아이디어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시군에서는 경쟁이 격화돼 유치대상 기관을 상대로 한 과잉로비와 함께 인터넷 등에는 경쟁상대 시군을 헐뜯는 글도 쏟아지고 있다.

지역마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공공기관 유치전의 현장을 돌아봤다.

◇상주

지난주 상주시 서문네거리 공공기관 유치 기원탑. 높이 1.8m, 폭 90㎝ 규모의 대형 유리관은 형형색색의 종이학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려 20만 개다. 지난 7월 15일 기원탑을 설치한 상주사회복지협의회 이재법(44) 회장은 "공공기관들을 찾아 종이학을 전달하고 시민들의 정성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했다.

상주는 공공기관 유치 열기 외에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상주 적십자 병원에 근무하는 하춘도(49) 씨는 공공기관 이전 홍보에 만화를 등장시켰다. 지역 소설가 및 만화가와 손잡고 최근 '상주로 이사 온 혁신 씨 가족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만화 5천 부를 출판했다.

공공기관 혁신도시 상주유치 범시민추진위원회 김형구(68) 대표는 "범추위 회원 70명은 4, 5명씩 조를 짜 13개 공공기관 산하의 전국지사 100군데를 방문했다"고 말했고, 소를 키워 번 돈 1천만 원을 공공기관 유치 활동비로 기부한 강원모(71) 씨는 "읍·면·동 단위의 계모임을 통해 수만~수십만 원의 성금을 전달한 상주시민이 수백 명에 이른다"고 했다.

범추위 김철수(63) 위원장은 "상주시 인구는 한때 27만 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11만 명으로 줄었고, 최근 수년간 공단, 온천 조성 등 모든 개발 사업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소외감이 극에 달했다"며 "공공기관 유치는 상주를 사람 모이는 도시로 만드는 마지막 기회"라고 절박해 했다.

상주시는 지난해 2월부터 도내에서는 가장 먼저 한국도로공사 유치에 나섰다. 도로공사 유치를 위해 시민 5만 명 서명 운동을 벌였고 팸플릿 1만 부, 전단지 2만 부에 CD까지 제작해 시 홍보에 나서고 있다.

◇김천

'공공기관, 혁신도시 최적지 김천.' 지난 2000년 개관한 김천시 삼락동 문화예술회관에 걸려 있는 가로 30m, 폭 5m짜리 대형 플래카드 문구다. 일대는 내년 전국체전을 맞아 국내 최대 규모(15만평)의 스포츠 타운이 들어서는 곳.

김천시 박성규 문화공보담당관은 "2000년대 들어 변화하는 김천의 모습을 상징하는 곳"이라며 "공공기관 이전에 필요한 도시 인프라 측면에서 김천시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이라고 말했다.

김천시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인프라는 KTX. 공공기관 이전을 마무리하는 2012년에 앞서 2010년까지 고속철역사를 완공하면 수도권 교통거리가 1시간 이내로 줄어든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고속철역사가 들어서는 농소, 남면과 역사와 5분 거리인 아포읍 인리 일대를 가장 강력한 공공기관 이전 후보지로 꼽고 있다.

대내외 홍보에 전력을 쏟아 시는 아파트단지, 대학가, 김천역, 고속철역세권 일대에 초대형 플래카드만 20개 넘게 설치했고, 여기에 들인 예산은 4천만 원에 이른다.

188개 사회단체장이 참가해 7월 18일 발족한 공공기관 및 혁신도시 유치 범시민추진위원회(범추위)는 4, 5명씩 조를 짜 13개 공공기관의 전국지사를 방문하고 있다.

전라, 충청 일원을 찾았던 이호영 김천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은 "공공기관들이 노동조합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겠다고 공언해 직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범추위 김용대 위원장은 "21개 팀으로 나눠 전국 80군데의 공공기관 지사에 시민들의 뜻을 전달했다"며 "경쟁 지자체들이 국회의원까지 동원해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만큼 김천은 시민 역량을 결집하는 심포지엄을 열고 차별화한 공공기관 입지 강점을 홍보할 계획"이라고 했다.

◇영천

잠잠하던 영천이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동안 세미나와 정책 개발 등을 통해 조용히 공공기관 이전 최적지가 영천이라는 것을 알렸죠. 평가기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타 시·군에서 대대적인 붐 조성에 나서고 있어 이러다간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이 됐어요."(영천시 혁신분권 개발 추진단 신을용 담당)

영천은 당초 농업지원기능군을 유치할 계획이었으나 정부에서 혁신도시를 한 곳에 집중배치키로 하자 전략을 농업지원기능군을 포함한 혁신도시 유치로 급선회했다.

신 담당은 "농업지원기능군은 원래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발표 전부터 영천이 적극적으로 유치를 추진해 왔고, 농업지원기능군이 경북으로 온 것도 영천의 사전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영천은 공공기관 직원은 물론 도민들의 공공기관 이용도 타 시·군보다 경쟁 우위라고 밝히고 있다.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춰 접근성이 경쟁 지자체 중 가장 유리하고, 교육 여건도 경북의 중심지라는 것. 그래서 시장, 직원, 시민단체 대표 등이 공공기관 등을 수 차례 방문, 이를 알렸다.

영천은 추석 전후로 해 1만 장의 팸플릿을 제작, 배포했고 3천여만 원을 들여 대형현수막과 광고탑을 시내 곳곳에 만든다.

◇우리도 있다

경산은 지난 7월 공공기관 유치협의회를 구성한 데 이어 최근 특별홍보단을 발족했다. 시 곳곳에 걸려 있는 공공기관 홍보 플래카드만 400개에 이르고, 유치 위원들은 공공기관을 방문해 직원마다 복숭아 1개와 홍보전단을 나눠주며 경산 이전을 호소하고 있다.

문경시 공공기관 유치 추진위원회 및 실무위원회엔 137명의 지역 인사가 참가하고 있다. 한국전력기술(주)을 시작으로 농업기능군 4개 기관 및 도로교통기능군 3개 기관을 방문해 유치 의사를 전달했다. 방폐장 유치를 선언한 포항, 경주 역시 한국전력기술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구미는 공공기관 홍보 플래카드 70여 개와 홍보책자 1천 부, 홍보 CD 등을 제작했다. 구미 유치추진위원회는 한국도로공사, 한국건설관리공단, 한국전력기술 등 8개 공공기관을 찾았다.

영주는 부시장을 팀장으로 하는 공공기관 유치 실무지원팀을 구성했고, 청도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농산물품질관리원 유치 전략을 세웠다.

지난달 11일 유치위원회를 구성한 군위 또한 13개 공공기관을 방문하고,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군수 이름의 서한문과 혁신도시 건설계획, 홍보 안내문 등을 게재했다.

지난달 23일 창립 총회를 개최한 칠곡군 유치위원회는 최근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기술을 방문, 홍보 활동에 돌입했다. 일부에서는 단독 유치가 힘들다면 구미와 연계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한편 지자체 관계자들은 "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는데도 내년 선거용으로 공공기관 유치전에 뛰어드는 지자체장과 지역 인사들도 많다"고 했다.

이창희·이종규·이채수·엄재진·이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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