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끝나지 않은 역사 갈등과 북핵 등 불안한 요소를 안고 있지만, 가장 역동적인 경제를 자랑하며 미래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지역이다. 그런 동북아에 내가 눈을 뜬 것은 관선 경북지사로 있던 1993년이었다. 그해 일본에서 한국, 중국, 러시아 등 4개국 11개 광역자치단체장들이 모여 '동북아 자치단체회의'를 처음 개최하였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는 혼자 참석했는데, 가서 보니 일본이 동북아 선점을 위해 애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민선 지사가 된 직후인 1995년 9월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다시 회의가 열렸다. 나는 더 이상 일본에 주도권을 빼앗기면 안 되겠다 싶어 "회의체가 아닌 국제연합체를 결성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국가들 간에는 과거사나 영토 문제로 당장 공동체 형성이 어려우니, 우선 자치단체 간이라도 교류의 장을 만들어 상생의 동북아로 가는 물꼬를 터 보자고 했다.
나의 제안에 중국, 러시아, 몽골은 전폭적인 지지를 해 주었다. 취지에 공감할 뿐만 아니라 패권주의 의혹을 떨치지 못한 일본이 주도하는 것보다 낫다고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자치단체들은 세(勢)가 불리함을 느낀 탓인지 의장과 상설사무국 등 민감한 문제를 제기하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 총회 때 연합체 결성을 마무리 짓자. 오늘 제기된 문제들은 다음 총회를 개최하는 자치단체를 간사로 실무위원회를 구성하여 연구하자"고 했더니 모두들 동의해 주었다. 그리자 일본의 토야마현이 총회를 개최하겠다고 나섰는데, 치열한 경합 끝에 경북이 유치에 성공해 이후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일을 진행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듬해인 1996년 9월 경주에서 '동북아 자치단체연합'(NEAR : The Association of North East Asia Regional Governments)을 출범시키면서 연합이 영속적인 국제기구임을 선언하는 헌장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또한 2년마다 순회하며 총회를 개최하되 의장과 순회 사무국은 개최지 자치단체에서 맡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나는 초대 의장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이사예프 지사와 함께 북한의 가입을 추진하여 2002년에 함경북도와 라선직할시가 동참하게 되었다. 2004년 흑룡강성 총회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었던 상설사무국을 경북에 두기로 결정했는데, 이로써 민선 출범 직후부터 공을 들여온 동북아 구상에 하나의 방점을 찍었다. 세계적으로 세계화와 블록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이때, 동북아지역 6개국 40개 자치단체가 회원으로 있는 NEAR는 앞으로 그 가치가 더욱 빛날 것이라 믿는다. 이를 발판으로 우리가 꿈꾸는 동북아 중심 국가가 앞당겨지기를 바란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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