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가위 달님이 굽어보는 세상

입력 2005-09-15 11:36:29

팔월 한가위의 달님이 이 추석에는 유난히 신비롭게 보입니다. 맑고 밝지만 어딘가 아주 차갑고 차분하게 제자리를 지키면서 우리의 세상 지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저 달이라는 별은 무엇이며 그 달이 굽어보는 우리는 누굴까요.

달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우리는 아주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달님은 달력(月曆)의 주체로 씨 뿌리는 봄부터 추수하는 가을에 이르는 농사의 절기를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그뿐입니까? 내주에는 추분, 그리고 곧 한로, 상감, 입동이 오는 것을 예보해 줍니다. 소설과 대설이 어김없이 따라오고 동지가 지나면 소한과 대한의 엄동설한을 달님은 친절하게 예고해 줍니다. 양력(西洋曆)보다는 월등하게 믿을 만한 달력이 아닙니까?

달은 참으로 신비스런 별입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정해진 속도로 몸통을 굴리면서 29.5일 동안을 돌아서 제자리로 옵니다. 그것을 한 달이라고 우리는 부릅니다. 그런데 달의 한날(一日)은 우리의 두 주간이어서 달님의 한 달은 겨우 이틀입니다. 우리 세상 지구를 한 번 도는데 27.5일이 소요됩니다. 하루도 휴일이 없이 우리를 굽어 살피고 있습니다. 고마운 우리의 위성입니다.

"이 태백이 놀던 달"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은 이제 베일을 벗어 버리고 우리 곁으로 가까이 왔습니다. 400년 전의 갈릴레오가 달독의 산들을 망원 관찰하고 1969년 7월 20일엔 드디어 인간이 달나라에 발을 딛고 섰습니다. 크기로는 달님이 지구의 3분의 1도 안 되지만 달은 해님으로부터 받는 찬란한 빛을 100분의 1도 못되는 0.073 정도만을 반사(反射)하여 우리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밝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달님은 자신을 분별없이 뽐내고 자만한 모습이 전혀 없이 겸손해 보입니다. 지구를 오히려 높이 보고 파수꾼 혹은 등대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달님이 좋습니다.

달님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한 가지 예만 들어 봅시다. 적어도 하루에 두 번씩 달은 우리 지구의 바다 수위를 올렸다 내렸다 합니다. 조수(潮水)의 신기한 오르내림을 누가 쉽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달 쪽을 향한 지구바다의 수면이 달의 강한 인력에 의해 빨려 오르기도 하고 멀어지면 내려가기도 하는 이 신비함을 우리는 경외할 줄 모르고 삽니다. 곳에 따라 10m의 만조를 보이기도 합니다. 불가사의가 바로 이런 상태가 아닐까요?

그 달님이 표면에서 지구가 동터오는 모습을 찍은 아폴로 11호의 사진을 저는 지금도 보고 또 보곤 합니다. 이 한가위의 우리나라와 한반도를 어떻게 달님은 보고 있을까요? 반겨 웃을 일들도 있고 걱정스레 낯을 찌푸릴 일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해 농사의 풍년추수를 곳간에 가득히 채우고 선영 산소에서 성묘를 하고 가족들이 오곡밥과 백과(百果)를 즐기는 중국과 우리나라는 달님이 보기에도 반가울 것입니다. 반면에 너무 많이들 먹고 마시고 병이 나는 모양이나 교통마비로 고속정류장을 만들고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은 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듯합니다.

남북장관급회담이 평양에서 열리고 베이징에서는 제4차 6자회담이 속개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평화의 날이 속히 오게 하는 밝은 징후가 이 추석에 보였으면 달님도 파안대소할 것 같습니다. 5천 년 역사에 제일 밝고 힘찬 민족의 행진이 시작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뉴욕 유엔총회에서 우리 대통령이 세상을 향해 연설했습니다. 세계가 한민족의 추석을 지켜보며 우리의 한과 소망을 들어주기를 손 모아 빌어 봅니다.

며칠 전 체코에서 열렸던 세계 장애인 수영대회에서는 태극기가 높이 올랐습니다. 19세의 장애우 김진호 군이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한민족은 세상을 이기고 인류를 이끌고 갈 겨레입니다. 자폐증을 딛고 일어나 세계의 수영왕이 된 김군의 추석을 7천만이 반기고 그의 용맹스런 행군의 뒤를 따르십시다.

이윤구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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